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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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부터 독특하다.

설마하다가도 그럴법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기이하고도 공감되는 재난여행이라는 소재로 우리의 어두운 면을 소름이 끼칠 정도로 고스란히 끄집어내고 있는 소설 《밤의 여행자들》.

 

재난과 여행을 결합한 상품을 운용하는 여행사 <정글>의 여행 프로그래머 '요나'는 10년간의 회사생활을 한 나름 베테랑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근래 자신의 프로젝트도 빼앗기고 그녀의 경력에 맞지 않는 사소한 일 처리까지 떠맡는 미세하고 교묘한 위기를 감지한다.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는 상사 '김'에게 성추행까지 당하게 되자 옐로우카드 대상이 된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낸다.

결국 사표를 쓰지만, 상사 '김'은 한 달간 출장처리해 줄 테니 계속 진행할지 접을지 검토 중인 상품 중 한 가지를 골라 소비자 관점에서 직접 여행을 다녀오고 보고서를 제출하라 한다. 그렇게 해서 고른 상품은 제주도만 한 섬나라 '무이'에 있는 5박 6일짜리 '사막의 싱크홀' 여행이다.

 

『 일상에서 위험 요소를 배제하듯, 감자의 싹을 도려내듯, 살 속의 탄환을 빼내듯, 사람들은 재난을 덜어내고 멀리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배제된 위험 요소를 굳이 찾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생존키트나 자가발전기, 비상천막 같은 것을 챙기면서, 재난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아다닌다. 정글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행사였다. 』  - p11

 

사람들이 여행에서 기대하는 감성 충만한 느낌이 곳곳에 잘 배어있다.

'일상의 공백을 통해 가벼워지는 무게들과 예기치 않는 변화들'은 익숙지 않은 장소로 떠나는 여행이 주는 묘미다.

 

『 어쨌거나 요나는 이 비릿한 내음이 싫지 않았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마을에 다다를 때 후각이 자극을 받는 순간은 처음 한순간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낯설어지지 않는 한, 처음 접한 그 순간의 후각적 자극을 매 순간 인식하기란 어렵다. 』 - p44

 

재난 여행의 반응은 충격 -> 동정과 연민 혹은 불편함 -> 내 삶에 대한 감사 -> 책임감과 교훈 혹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살아남았다는 우월감이라고 요나는 생각한다. 재난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는 이기적인 위안을 함께 맛보며 재난 여행을 찾는 사람들. 하지만 무이의 사막 싱크홀 상품에서는 그러한 어떤 재난 여행의 효과도 실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이의 사막 싱크홀은 그녀처럼 퇴출 위기에 직면해있는 것이다.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탄 열차에서 요나는 화장실을 다녀온 찰나, 중간에 노선이 갈려 반 토막으로 나뉜 열차 때문에 일행들과 헤어지게 된다. 여권도 지갑도 없는 상황에서 어쨌든 며칠간 머물렀던 리조트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데...... 그곳은 전혀 다른 표정을 갖고 있었다. 두 다리를 잃은 아코디언 연주 노인은 멀쩡히 걸어 다니고 슬픔의 눈망울을 가지고 있던 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모든 건 영업일에만 문을 여는 세트처럼.

 

다행히 정글 여행사 직원이란 게 밝혀져 리조트 측은 요나를 신뢰하고 경악할만한 스토리를 꺼내는데.......

관심이란 건 정직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큰 재난이어야 주목받는 자극적인 세상. 거기에 감동 스토리까지 더해져야 사람들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 여행객이 줄어들고 정글에서도 불안한 낌새를 느끼면서부터 이곳 무이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나도 비밀스러운 공범이 되어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계획에 동참하게 되어버린다. 처음에야 충격이 있었지만, 서서히 그 충격도 가시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일어날 계획된 미래의 재난사건 이후의 여행프로그램을 짜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 일이 미칠 영향력에 대해 점점 둔감해진다.

 

 

 

하지만 현지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계획된 스토리에는 그가 죽는 것으로 짜인걸 알게 된 이후 요나의 감수성은 되돌아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남자를 무사히 구할 수 있을지....... 쓸모가 없어지면 퇴출당하는 현실의 직장에서처럼 무이에서도 재난 시나리오에 결국 쓸모가 없어진 요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 그곳의 모든 생활들이 갑자기 점. 점. 점. 으로 끊어졌다. - p9

- 모두 점. 점. 점. 난파당했다. - p10

- 점. 점. 점. 숨을 옥죄어 왔다. - p29

- 저 아래는 점. 점. 점 박힌 불빛들로 모자이크 처리가 된 것 같았다. - p36

- 점. 점. 점. 흩어졌다. - p224

 

글에 자주 등장하는 점. 점. 점. 은 단절되는듯한 상황을 독특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여행이 주는 느낌은 약간의 두려움을 머금고 있는 낭만적인 일탈이다. 하지만 《밤의 여행자》들의 여행은 현실적이다 못해 섬뜩하게 다가온다. 남의 불행을 철저한 비즈니스 관광 상품으로만 보게 되는 인간의 모습은 굳이 여행사 입장이 아닌 우리 개개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타인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어둠의 일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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