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스티븐 러벳 지음, 조은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미국 법학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린다는 스티븐 러벳 법학 교수가 들려주는 논쟁의 중심에 선 재판 이야기와 상식과 정의의 딜레마가 안고 있는 현실,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과 윤리성의 문제 등 법과 정의의 모호하고 양면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책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 

 

정의의 심판을 받아라! 라는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 속에 힘을 잃고 가는 사회에서 사법체계의 청렴성,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가 이 이 책에서 알려주고 싶어하는 바다. 의뢰인편, 변호사편, 판사편, 법학계편, 의료계편으로 나눠 부정적인 사례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원제가 The Importance of Being Honest 정직함의 중요성인데 의뢰인이나 변호사는 진실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일단 생각하기 마련이다. 의뢰인조차 자신의 변호사를 속이려 드는 거짓말을 일삼는 사례를 통해 (빌 클린턴과 오스카 와일드 사례) 도덕성과 청렴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반면, 명백하게 선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위험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딜레마도 있다. 월마트 사진현상소에서 근무하면서 불법 사진을 보고 경찰에 즉각 제보해서 영웅이 된 한 여성은 그 일로 직장에서 해고됐다. 상관과 상의 없이 고객의 사진을 유출했기 때문이었는데 법원은 월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사안 자체가 딜레마인 경우도 있었다. 일명 '원숭이 재판'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1925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쳐 기소된 생물교사의 사례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결은 진화론측 변호사의 종교 경멸 막말로 재판결과대로 승리한 것도 아닌 결과적으로는 부끄러운 사례를 남기게 하였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최승희 사건은 가슴이 아픈 사례다. 기숙사에서 이미 1명 사망, 1명 부상을 알게 되고도 인지오류 함정에 빠진 초반 대응으로 엉뚱한 용의자로 확정 후 다른 가능성을 배재하게 된 탓에 캠퍼스 안전을 강화하지 않고 해제시켰다가 결국 32명 사망, 28명 부상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다. 저자는 인간의 인식에는 인지오류가 내재 있고 거기에 면역된 사람은 판사나 변호사는 물론 아무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인지오류의 만연으로 법률 진상조사의 표준개념에 심각한 결함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 마지막 증거를 다 받을 때까지는 판단유보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그럴듯한 연결성을 긋는 것이 변호사의 일이고 판사나 배심원은 그 선을 분류해야만 한다.

 

 

법조계보다 더 못한 의료계의 고전적인 직업 문화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원인이 무엇이든 의료과실은 만연해 있지만 현재 소송체계가 그것을 다루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고 문제 제기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소모도 많고 무엇보다 불확실하며 소송이 의도한 대로 진행된다 해도 그것의 기본적인 목적은 보상이지 의료 체제 개선이 아니라는 것. 환자에게 사실을 고지하고 승인을 받는 개념도 의료계에서는 늦게 정착됐으며 변호사업은 사업으로서 법조윤리도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상업적 관계를 촉진하도록 발전해왔지만 '의사의 명령' , '변호인의 조언' 이 두 업계의 차이를 잘 요약한 단어처럼 의료계의 문제점을 심각히 다루고 있다.

 

여전히 전문가 윤리 시스템이 개인의 선택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지, 나쁜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소송을 일으키는 형국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고 한다. 좋든 싫든 사법체계는 모두의 입장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하고 모든 이야기를 완전하게 알리려 하며 모두가 균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법은 진실을 담는 가장 안전한 그릇일 뿐이라는 것. 법이 곧 진실이자 정의일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이슈가 된 법 체계의 부조리를 폭로한 이 책은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례가 없어서 조금은 덜 흥미진진한 면도 없진 않았다. 사례마다 정답을 내놓진 않았지만, 저자의 시각은 제법 신선하며 다시 심사숙고해 볼 동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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