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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었습니다
김선규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9월
평점 :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김선규 시인의 시집 『꽃이 되었습니다』는 살아오면서 겪은 사랑과 이별, 가족과 일상, 세월의 흐름과 사회의 아픔을 시의 언어로 돌아봅니다.
삶은 언제나 기대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견디고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작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떠나보내며, 기억은 남아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전합니다.
젊은 날의 감정부터 나이 듦에 대한 생각, 어머니를 향한 마음,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다섯 개의 부를 지나며 이어집니다. 그 중심에는 삶을 다 겪어 본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으며, 무엇을 끝내 간직하고 있을까요?

살아가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지나치게 심각하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보여주는 시들이 펼쳐집니다. 「잡견」, 「동물임을 믿기로 했다」, 「좌우명의 자기 고백」, 「말」 등 자존심과 본능,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을 여러 방향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특히 시 「말」이 재밌습니다. "그래 너 잘났어 / 네 똥 굵다 / 오늘도 말싸움을 하다가 / 그놈 세 치 혀를 이길 수 없다며 / 씨불여대며 마지막 던진 말 / 그중에 최고는 / 잘 먹고 잘 살아라 / 참 좋은 말이다"
'잘 먹고 잘 살아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저주처럼 들리기도 하고, 더는 상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감정을 쏟아낸 뒤 관계를 정리하는 사람의 속마음도 그 안에 담깁니다.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을 통해 감정의 소모를 멈추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삶의 모순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유머 감각이 와닿았습니다. 자기 객관화가 된 자학 개그이지만, 의외로 이런 태도가 가장 믿음직한 위로가 될 때가 많습니다.
시선을 넓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와 공간을 살피는 시도 가득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에는 각자의 사연뿐 아니라 시대가 남긴 흔적도 함께 쌓입니다. 시 「내가 사는 곳」에서는 익숙한 장소가 더는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담아냅니다. 바람은 불고, 산과 돌탑도 그 자리에 있지만, 그 풍경을 둘러싼 환경은 달라졌습니다.
고향이나 오래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았을 때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이 있습니다. 그곳을 기억하는 나의 나이도 달라졌고, 함께 풍경을 만들던 사람들 역시 자리를 옮겼거나 더는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소가 과거와 현재에 서로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책의 제목이 된 『꽃이 되었습니다』에서 꽃은 도달해야 할 완벽한 상태라기보다 삶을 통과한 뒤 얻는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꽃이 피는 순간에는 이미 시들고 떨어질 시간이 함께 다가옵니다. 상처와 기쁨, 후회와 사랑을 모두 겪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지금까지 견뎌 온 시간이 어떤 모양으로 남아 있는지, 그 시간 덕분에 새롭게 이해하게 된 감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집에서 사랑을 읽는 일은 연애의 감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건네는 말까지 함께 놓고 보면 사랑은 삶의 여러 관계를 이어주는 감정으로 확장됩니다. 서로 다른 세대와 관계에서 사랑의 표현은 달라질 수 있지만, 상대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은 일상 속 행동과 기억을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일과 책임에 쫓기면서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시간은 관계를 위해 멈춰 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오늘 안부를 묻고, 함께 식사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꽃이 되었습니다』 시집을 읽으며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후회되는 선택이 있다고 해서 그 시절 전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때 나누었던 마음까지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사라진 풍경과 달라진 관계 역시 지금의 자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떤 이별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나온 경험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은 앞으로의 삶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무엇을 반복하지 않을지, 누구에게 마음을 전할지, 무엇을 소중하게 지킬지 조금 더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수사나 어려운 해석보다 생활 속 언어로 삶의 여러 단면을 마주하는 『꽃이 되었습니다』. 입말처럼 술술 읽히는 시들이 가득해 누구나 쉽게 펼쳐 들고 시인의 진솔한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