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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 - 인생의 길목에서 펼쳐보는 43가지 마음 사전
장성숙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년 넘게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현실 역동상담'이라는 한국적 상담 틀을 정립해 온 장성숙 명예교수의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
2001년 출간되어 언론의 호평을 받았던 『그래도 사람이 좋다』를 25년 만에 다시 다듬어 펴낸 책입니다.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가장 애정을 갖고 고쳐 쓴 이 책은 고달픈 삶을 소풍날로 바꾸는 지혜를 43가지의 마음 사전에 담아 나눕니다.
소풍이라는 프레임이 와닿습니다. 소풍은 끝이 정해진 외출입니다. 해가 지면 돌아가야 하니, 오늘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전제됩니다. 소풍은 성과를 내러 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소풍을 KPI 달성으로 다녀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계획이 틀어져도 소풍입니다.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김밥이 터지면 터진 대로 이야기가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의 핵심 태도는 삶을 소풍처럼 바라보자는 것이고, 그렇게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실패한 하루가 아니라 여정의 일부가 됩니다.
정답이 없는 삶을 어떻게 견디고, 관계 속에서 어떻게 덜 다치며, 스스로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오늘을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생활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아픈 사람에게 무조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건 당신이 지나치게 애쓴 탓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당신이 그 관계를 계속 끌고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현실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 책은 43가지 마음을 계절의 흐름에 배치합니다. 봄에서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고, 여름에서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가을에 이르면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쓰지 않는 법을 살피고, 겨울에서는 그렇구나 하고 흘려보내는 태도를 다룹니다.
젊을 때는 무엇이든 붙잡아야 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도, 성공도, 인정도, 관계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아보면 알게 됩니다. 붙잡는 힘만으로는 인생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애써 지켜야 하지만, 어떤 것은 보내야 합니다. 어떤 관계에는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위한 선택이 됩니다.
삶의 모든 선택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피곤한 전략이잖아요. 저자는 모든 것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무엇을 흘려보낼지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서 더 와닿았습니다.

솔직함과 자기애에 대한 냉철한 통찰도 인상 깊었습니다. 솔직한 것은 그만큼 상대를 믿는 것이고, 그래서 그것은 좋은 것이라는 미화적인 공식에 취해 있다는 걸 꼬집습니다. "그래서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입을 열다 화를 자초한다."라고 말입니다.
솔직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은 관계의 윤택함을 위해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고 감출 줄 아는 분별력의 부재이자, 나아가 내 감정의 짐을 상대에게 전가하려는 어린아이 같은 무책임에 가깝다는 걸 짚어줍니다.
불교적 개념인 업(業)과 정신분석의 무의식을 비교하며 삶을 대하는 자율성과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문제의 근원을 외적인 대상이나 타인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성숙한 태도"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내가 개입되어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남을 탓하며 괴로워하는 인과의 굴레에서 벗어나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합니다.
후반부에서는 번잡스러움을 훌훌 털어버리는 비움의 자세를 이야기합니다. 70년 인생 경력과 40년 상담 경력이 응축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삶의 시시각각 변화하는 속성을 인정하고, 욕심을 내려놓은 채 현재 여기에 열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소풍으로서의 삶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소풍 온 심리학자입니다』는 매일 반복되는 관계의 피로와 예상치 못한 인생의 시련 앞에서 흔들리는 우리들에게 단정한 삶의 이정표가 되어줍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