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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트렌드 노트 - AI 시대, 나를 지키는 조건 ㅣ 트렌드 노트
박현영 외 지음 / 북스톤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생활변화관측소의 박현영 소장을 비롯해 데이터 엔지니어 김종민, 라이프스타일 리서처 신수정, 사회 관찰 연구원 김정구, 공간 전략가 이원희 등 5명의 전문가가 공저한 『2027 트렌드 노트』.
이 책은 AI가 얼마나 발전할지를 예측하는 기술서가 아닙니다. AI가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 뒤 사람들이 무엇을 불안해하고, 무엇에서 안도감을 얻으며, 어떤 소비와 관계와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하는지를 데이터로 관찰한 책입니다. 유행보다 오래가는 인간의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결과물이 쉬워졌다고 삶의 의미까지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직접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완성한 결과와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준 결과가 똑같이 보인다면,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확인해야 할까요?
『2027 트렌드 노트』는 이 질문을 통제감과 성취감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취감이라는 단어의 온라인 언급량 변화입니다. 2020년까지 연간 약 10만 건 정도 언급되던 성취감이 2025년에는 100만 건에 육박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감정을 확인해야 할 이유가 훨씬 커졌다는 점입니다. 결과물이 너무 쉽게 나오다 보니, 그 안에 내 노동과 고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상실감이 찾아온 것입니다.

기술에 의존할수록 자신의 일상과 삶에 대한 통제 권한을 잃어버린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됩니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최근 사람들이 펠트, 자수, 뜨개질, 필사, 런닝, 직관 등 직접 몸을 움직여 느린 속도로 물리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활동에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정을 온전히 내가 통제하고 지휘했다는 실감, 즉 내가 해냈다는 자각이 AI 시대의 희귀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비즈니스 역시 단순히 모든 것을 알아서 대신해 주는 편리함만 제공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과정에 개입하여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AI를 활용하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실력이나 스펙의 변별력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제 타인과 브랜드, 서비스를 평가하는 진짜 기준은 태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관계가 느슨해지고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상대방이 약속을 이행하는 방식, 타인을 배려하는 말투, 커뮤니케이션의 정직함이 그 사람의 신용을 결정합니다. 브랜드 역시 매력적인 마케팅 언어 뒤에 숨은 진정성과 고객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가 중요합니다.
1020세대가 집안일이나 자신의 노동을 시급으로 객관화하고, 확실한 근로계약서를 통해 관계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려는 경향도 같은 맥락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내가 확실히 보장받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려는 합리적인 생존 태도인 셈입니다.
AI는 무수한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평균적인 보편성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시장에서 진짜 열광을 끌어내는 것은 매끄러운 보편성이 아니라, 누구도 복제할 수 없는 굴곡진 개인의 서사입니다.
전형적인 20대 여성 중심의 뷰티·라이프스타일 콘텐츠 시장에서, 중년 남성인 추성훈의 일상이나 정갈한 도쿄 라이프를 담은 영상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현상에 주목합니다. AI로 누구나 정보를 다량 생산할 수 있는 시대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소개)보다 누가 어떤 맥락과 서사를 거쳐 그것을 말하고 있는가(깊이)가 훨씬 중요해집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축적된 서사를 가진 개인과 브랜드만이 독보적인 브랜드 파워를 갖게 됩니다.
삶의 주기를 바라보는 프레임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은퇴는 이제 모든 일을 마치고 쉬는 종착역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재설계하는 제3성인기의 시작입니다.

예전에는 50대 이후를 단순히 시니어, 노인이라는 일차원적 프레임에 가두었다면, 이제는 60대 이후에도 스스로의 리듬을 지키며 활력 있게 살아가는 개별 주체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와 맞물려 웰니스의 개념도 거창한 건강 관리나 휴양이 아닌, 매일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컨디션 관리로 세분화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위로 비즈니스입니다. 과거 앱의 시대가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높이 성장할 것인가를 다루었다면, AI의 시대는 어떻게 하면 밑바닥으로 무너지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가가 화두가 됩니다.
인간의 불안을 부추겨 소비를 유도하는 마케팅은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우리는 고객을 어떤 기분과 상태로 만들어주는가라는 질문에 진정성 있게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거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