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판사, 나쁜 판사
류기인 지음 / 펜타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처벌인가 용서인가, 소년재판의 자물쇠를 푸는 류기인 판사의 『착한 판사, 나쁜 판사』. 2022년부터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를 전담해온 류기인 부장판사는 감정적 응징이나 막연한 온정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법정의 현실을 담담히 기록합니다.


류기인 판사는 단일 재판부 기준 전국 최대의 사건(연 2,700여 건)이 몰리는 창원지방법원의 소년사건 전담 판사입니다. 법정 안에서는 칼날 같은 책임감을 요구하지만, 법정 밖에서는 아이들과 1대1로 짝을 지어 걷는 걷기학교를 운영하고 청소년 시집 『이제는 집으로 간다』를 엮어낸 다정한 어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길거리에서 술을 사달라는 중학생에게 훈계를 늘어놓고 돌아서서 후회하거나, 아내의 분갈이 지시에 군말 없이 흙을 나르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소년법정의 아이들은 SNS를 통해 판사의 성향을 공유합니다. "나 이번에 류기인 판사한테 걸렸음. 예전엔 봐줬다는데 요즘은 엄청 세게 준대."라며 소년원에 보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판사는 착한 판사, 엄한 처분을 내리는 판사는 나쁜 판사로 규정됩니다.


소년부 업무 초기, 저자 역시 아이들을 가급적 가정으로 돌려보내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법정에서 눈물로 사죄하고 돌아서서 더 무거운 범죄를 저질러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며 깊은 회의에 빠집니다. 가벼운 처분이 아이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디서 어긋났는지를 찾기 위해 매번 재판 기록을 다시 펼칩니다. 어긋난 자리를 알아야 바로잡을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어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만 확인하면 재판은 비교적 쉬워집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왜 그 행동에 이르렀는지를 살피는 순간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과 아이의 잘못을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은 동시에 가능해야 합니다.


『착한 판사, 나쁜 판사』가 말하는 키워드는 냉정한 선처입니다. 잘못을 가볍게 넘어가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방임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더 큰 범죄의 길로 빠져들기 전에 단호히 멈춰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기회입니다.


처벌의 외형이 엄격하다고 해서 아이를 포기한 것이 아니며, 가벼운 처분이 언제나 아이를 위한 것도 아닙니다. 재비행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엄격하지만, 목적은 포기가 아니라 회복에 있습니다.


소년원에서 제빵 기술을 배우던 한 소년이 판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아이들의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담겨 있습니다. 허세 섞인 거창한 약속을 스스로 지우고, 동네 빵집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겠다는 현실적인 다짐을 적어 내려간 아이의 문장에서 변화의 싹을 발견합니다. 말뿐인 반성이 아닌, 자신의 현주소를 직시하는 솔직함이야말로 사회 복귀의 첫걸음입니다.


더불어 판결문 한 장의 명확한 한계를 인정한 그는 법원 직원, 상담가들과 함께 걷기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판결문 한 줄이 아이의 생활을 곧바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판결 뒤에 누군가 함께 걷고, 온전히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다시 만나자고 말해준다면, 아이는 적어도 혼자 버려진 것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청소년 회복지원시설 아이들의 시를 모아 시집을 내며, 비행 청소년들이 "죄송합니다"라는 관성적 대답 대신 진짜 자기 마음을 표현하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아이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사회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결코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닙니다. 결국 소년재판의 완성은 법정이 아니라, 처분 이후 아이들이 돌아올 우리 사회의 잔인하지 않은 풍경에 달려 있다는 걸 일깨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