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아 -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 아우구스테 레히너의 서양 고전 시리즈
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호메로스 원작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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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쏘아 올린 신화의 열풍을 맞이한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원작에 선뜻 다가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 24권, 약 1만 2,000행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운문 특유의 반복적인 서사 구조, 그리고 후반부의 귀향 시점에서 시작해 과거를 회상하는 복잡한 시공간 연출의 원전.


다양한 번역, 평역서들 사이에서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아우구스테 레히너(1905~2000)의 평역판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어줍니다. 오스트리아 대표 청소년 문학 작가이자 역사학·철학을 전공한 레히너는 트로이 전쟁부터 귀환까지의 여정을 시간순으로 깔끔하게 재구성해 냈습니다.


독일어권 고전어 수업과 중·고교 필수 읽기 교재로 반세기 넘게 사랑받아 온 레히너 판은, 원전의 깊이를 손상시키지 않고 직관적으로 고전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완벽한 책입니다.


『일리아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명예를 극대화하기 위해 신에 근접한 물리적 압도함과 초인적 용맹을 펼친다면,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유한하고 결함 있는 인간의 상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신들에게 원망을 퍼붓기도 하고, 상대를 불신하며 순간적인 불안과 임기응변, 심지어 속임수까지 서슴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인간적 약점들이야말로 그를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만듭니다.





오디세우스가 보여주는 궁극의 무기는 인내와 시기적절한 지혜입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혔을 때, 거인을 죽이면 동굴 입구를 막은 거대한 바위를 치울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기회를 기다려 탈출을 도모했습니다. 위기 순간마다 자신을 낮추고 타격의 시점을 보류하는 인내심은 수많은 변수와 위험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줍니다.


요정 칼립소의 섬에서 펼쳐지는 선택의 순간도 인상 깊었습니다. 7년 동안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한 젊음과 신과 같은 불사의 삶, 그리고 아무런 고통도 없는 안락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케와 아내 페넬로페, 그리고 가정을 향한 그리움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건 없는 편안함과 영원불멸의 유혹 앞에서도, 오디세우스는 고통과 고난이 예견된 험난한 인간의 길을 자처했습니다. 한계가 명확하고 마침내 죽음에 다다르는 유한한 삶일지라도, 사랑하는 이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나만의 정체성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신의 삶보다 값지다는 선언입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신들은 고난의 도구를 던질 뿐, 비극을 완성하는 것은 인간 본인의 오만과 도덕적 방종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이 태양신 헬리오스의 금기된 가축에 손을 대어 파멸을 자초한 것이나, 이타케 왕궁을 점령하고 행패를 부리던 구혼자들이 몰락한 까닭은 신의 가혹함 때문이 아니라 절제를 잊은 인간 스스로의 과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실책을 환경이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이들에게 자신의 행동과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웁니다.





부록으로 수록된 인물 관계도와 도식은 복잡하게 얽힌 그리스 신화의 인물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을 땐 신들의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었습니다. 제우스와 포세이돈, 아테나 같은 신들의 능력과 관계를 따라가는 게 즐거웠고, 당시에는 인간 영웅들의 이야기는 크게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오디세이아』. 기대 이상으로 흠뻑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신처럼 강하지도, 운명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인간이면서도 수많은 위기 속에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 살아남는 모습이 예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신들보다 인간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안하고 흔들리면서도 끝내 자기 길을 가는 인간이라서요.


레히너 판으로 읽은 덕도 큽니다.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다 보니, 한 인간이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며 마침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모험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면, 귀향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해 돌아가는 여정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와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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