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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부 - 쉽게 미워하고 오래 사랑하는 계절에게
백가희 지음 / 클랩북스 / 2026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백가희 저자의 『여름, 안부』는 땀과 습기, 열대야와 폭염, 이유 없이 날카로워지는 마음까지 여름의 불편한 면을 충분히 알고도 그 계절을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무엇보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유난히 많은 책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게 만드는 문장이 많습니다.
『당신이 빛이라면』, 『이토록 사랑스러운 삶과 연애하기』 등을 통해 사랑과 삶의 순간을 섬세한 언어로 기록해 온 에세이스트 백가희 저자. 사랑에는 불안과 피로, 오해와 수고가 따라붙고, 그래서 때로는 미움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오래 들여다봅니다. 여름을 좋아할 것인가, 싫어할 것인가라는 취향의 문제에서 출발해 결국 나는 타인과 세계를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일에는 엄청난 기력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나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며, 오해가 생겼을 때 해명하고 기다려주는 일은 실로 고단한 과정입니다. 반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단정 짓는 일은 지독히도 간단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 "나랑은 안 맞아"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미움이란 사실 우리가 마음을 쓰기 귀찮아 선택하는 게으른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누군가를 오랫동안 싫어하다 보면 정작 왜 싫어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미워하는 행위 자체에 현재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곤 합니다. 작가는 감정의 타성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부지런해지기를 자처합니다.
책 속 에피소드들은 감정이 삐걱거리는 순간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타인에게 상처받을까 봐 조바심을 내는 불안, 관계의 불확실성 속에서 느끼는 고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미움이라는 쉽고 편리한 길로 도피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계절의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할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정직한 태도와 눈빛을 반추하며 마음의 중심을 바로잡습니다. 모두가 짜증을 내는 여름날에도 땀을 닦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풍경을 향해 나아가던 K의 뒷모습처럼, 사랑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타인과 계절을 대하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계절은 풍경화처럼 아름답습니다. 푸르른 녹음, 파도 소리, 시원한 빗줄기처럼 관념 속의 여름은 청량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인 가까운 여름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길거리의 뜨거운 복사열, 땀에 젖은 옷가지, 장마철의 눅눅함과 번거로운 벌레들이 가득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타인을 적당한 거리에 둘 때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겪어보면 미처 예상치 못한 결점과 피곤한 디테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자는 타인의 디테일을 대하는 다정한 시선을 제안합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멋진 부분뿐만 아니라, 쉽게 드러내기 힘든 약점이나 피곤한 면모까지 함께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옆집 남자에게도 분리불안 강아지를 두고 다녀야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고요. 신경질적인 할아버지에게도 제가 모르는 따뜻한 모습이 있겠죠. 친절한 여성분에게도 제가 모르는 속사정이 있을 거고요. 빌라 사람들마저 이렇게 다른데, 세상 사람들 모습은 더더욱 다를 거예요. 저는 꼭 알아가고 싶어요. 너무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요.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 외면해도 될 말과 귀 기울여야 하는 말을 분류하는 법을요."라고 말입니다.
무더위 속에서 삶을 버텨내다 보면 스스로가 마모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백가희 작가는 나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일상의 작은 도전과 완주가 주는 소중한 가치를 건넵니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사소해 보이는 성취라도, 내가 목표한 바를 기어코 끝마쳤을 때 느껴지는 단단한 자존감은 삶의 거센 파도를 견디는 버팀목이 됩니다. 뙤약볕 아래를 뚫고 트랙을 마저 달리는 일, 매일 조금씩 글을 써 내려가는 일, 묵묵히 내게 맡겨진 하루를 살아내는 일 모두가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완주'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삶의 성숙함은 타인의 아픔을 깊이 헤아리는 예민함에서 완성됩니다. 아직 세상에는 가려진 편견과 차별, 서로에게 입히는 상처가 많기에 지금은 치열하고 예민하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고백은, 왜 우리가 매일 타인의 삶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아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일깨웁니다.
안부를 지금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인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왔지만 『여름, 안부』에서는 "네게 이 여름이 괴롭지 않기를. 아주 먼 기억 속 여름의 너를 기억해. 네게 이 여름이 덜 고되기를." 이라고 말하며 '안부'라는 단어가 지닌 본질적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여름이 안기는 불쾌함과 열기 속에서도 끝내 미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 그 부지런한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백가희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속에 쌓여 있던 텁텁한 미증과 회의감이 한결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무더위 속에 가려진 사랑의 디테일을 건져 올린 백가희의 『여름, 안부』가 건네는 삶의 다정한 기술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