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 종양내과 수의사의 삶에 스며든 상실 그리고 사랑
르네 알사라프 지음, 박은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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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년 가까이 동물의 암을 치료하며 방사선 및 항암치료의 최전선을 지켜온 수의 종양내과 전문의 르네 알사라프의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 이 책은 아픈 동물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아픈 인간의 이야기이고, 수의사의 회고록이면서 돌봄을 주고받는 모든 존재에 관한 책입니다.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수의사의 꿈을 품고, 대학 시절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해 학내 펫로스 애도 모임을 최초로 창설할 만큼 충만한 사명감을 지닌 수의사 르네 알사라프. 뉴욕 애니멀 메디컬 센터와 세계적인 암 전문 기관인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연구실을 거치며 미국 전역의 동물 암 환자 진료 체계를 구축해 온 그에게 어느 날 불길한 비극이 덮쳐옵니다.


수많은 동물 환자들의 차트에서 수도 없이 작성했던 단어, 암(Cancer)을 의미하는 'C'가 자신의 몸 내부로 침투했다는 진단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려견 뉴턴마저 림프종 진단을 받으며 집안 전체가 암이라는 짙은 그늘에 휩싸이게 됩니다.


치료하는 사람에서 치료받는 사람으로 위치가 뒤바뀌는 순간,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했던 환자, 보호자, 예후, 치료, 삶의 질이라는 단어들이 전혀 다른 무게를 갖게 됩니다.


질병이나 불행을 맞닥뜨렸을 때 과거의 잘못을 자책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극을 미리 끌어당겨 스스로를 고문합다. 정작 현재라는 시간은 불안과 초조함에 번폐된 채 허무하게 흘려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진료실을 찾아온 강아지 데이지와 벤틀리, 코즈모의 모습은 인간의 우매함과 대조를 이룹니다.





암 진단을 받고 넥카라를 찬 채 진료실에 들어온 강아지 데이지는 자신의 몸속에 시한폭탄 같은 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진료실 구석의 간식 상자와 수의사의 따뜻한 손길에 집중하며, 꼬리를 바짝 세우고 껑충껑충 뛰며 행복해합니다. 인간 환자가 "치료 후 내 외모가 어떻게 변할까?", "남들이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스스로 갇혀 있을 때, 동물들은 오직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비스킷 한 조각의 기쁨에 온몸을 내던집니다.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죽겠습니까?"라고 묻는 결장암 환자 보호자와 전립샘암을 앓고 있는 반려견 벤틀리의 에피소드는 돌봄의 동시성을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보호자가 항암치료의 극심한 피로로 침대에 누워 지낼 때, 벤틀리는 공을 던져달라고 떼쓰거나 산책을 가자고 보채지 않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보호자의 침대 밑에 조용히 엎드려 그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저자는 독한 항암제를 견디며 비로소 깨닫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압도당하지 않고,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의 태도로 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암이라는 절망적인 거인 앞에 선 미약한 인간이 네 발 달린 스승들에게 배운 삶의 법칙이었습니다.


외적 기준과 사회적 지위, 타인의 시선은 인간을 평생 죌 수밖에 없는 굴레입니다. 암에 걸려 머리카락이 빠지고, 수술 자국이 남고, 외형이 변해갈 때 인간은 극심한 자괴감과 불완전함에 시달립니다.


저자 역시 항암 치료로 인해 외모가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서 깊은 우울감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동물 환자들의 눈빛에는 어떠한 평가나 편견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내 허벅지 둘레나 옷 사이즈로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털북숭이 환자들에게서 배우려고 애쓰는 많은 교훈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동물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따뜻한 손길과 마음뿐이었습니다.


암과 싸우면서도 바닷물 속으로 신나게 뛰어드는 동물들의 모습은, 질병에 걸렸다고 해서 삶의 기쁨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나 자신을 수용하고, 존재하는 그대로 타인을 사랑하는 무조건적 수용이야말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약이 됩니다.


치료보다 어려운 질문은 "삶을 즐기고 있나요?"입니다. 치료의 한계에 가까워졌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 질문은 자기 자신을 향합니다. 저자의 반려견 뉴턴과의 이별이 찾아옵니다.





수많은 동물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시행하고 보호자들을 위로해 온 베테랑 수의사였지만, 반려견 뉴턴에게 고통만이 남은 연명 치료를 내려놓고, 존엄한 마지막을 결정하는 안락사의 순간. 눈물로 흐려진 시야 속에서 카테터를 잡습니다.


죽음 이후 찾아오는 것은 죄책감과 상실의 후폭풍입니다. 털을 떼어내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옷 위의 개털처럼, 부재의 흔적은 삶의 모든 구석에 침투합니다. 뉴턴의 투병을 돕기 위해 다른 뭔가를 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따로 해줄 수 있는 건 없었을까 하는 죄책감입니다.


저자는 이 죄책감 또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살아있고 그 존재가 곁에 없다는 미안함, 조금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역설적으로 그 존재를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암이라는 'C'는 삶을 파괴하러 온 불행일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돌봄이란 결코 인간이 동물에게 베푸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라, 질병과 죽음이라는 절벽 앞에서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는 쌍방향의 구원임을 보여줍니다. 끝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서로의 고통을 가만히 곁에서 지켜봐 주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들려줍니다.


동물들은 미래를 계획하지 않는 대신 현재를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인간이 배워야 할 것은 동물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가치까지 미래의 불안 때문에 할인하지 않는 태도일 겁니다.


수의사의 에세이라고 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만이 읽는 책이 아닙니다. 『아픈 동물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가』는 펫로스를 겪은 이들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사람, 언젠가 찾아올 이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책의 질문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마지막 순간에도 지금까지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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