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2 세트 - 전2권
고이시 유카 지음, 현승희 옮김, 신쵸사 협력 / 서교책방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책의 뒤편,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분투를 들여다보는 시간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손가락 한 번으로 온갖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단어 하나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밤하늘의 달 모양까지 검증하며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이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울림과 애정을 안겨줍니다.


1896년 창립한 신쵸사는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같은 작가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베 미유키, 미우라 시온 등 현대 작가들의 책을 펴낸 출판사입니다. 일본 출판계 내부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정확하고 꼼꼼하다는 명성을 얻은 130년의 역사를 지닌 신쵸사 교열부의 이야기를 생활 밀착형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만화가 고이시 유카의 만화로 만나봅니다.


교열은 흔히 맞춤법을 고쳐주는 일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를 읽고 나면 이 정의가 얼마나 좁은 것인지 알게 됩니다. 교열의 ‘교(校)’는 비교한다는 뜻이고 ‘열(閱)’은 검토하고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교열자는 글자를 보는 동시에 사람을 보고, 문장을 보는 동시에 맥락을 보고,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고민합니다.





소설 속 한 문장을 검토하기 위해 교열자는 어디까지 파고들어야 할까요? 설정을 짚어나가며 연도와 날짜를 파악하고 그날의 달 모양까지 팩트체크합니다. 텍스트에 구축된 가상 세계가 지상의 섭리와 부딪혀 허물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행위입니다.


작가가 놓친 미세한 설정의 균열, 예컨대 앞장에서는 소심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뒤쪽에서 뻔질뻔질한 소년으로 묘사되는 모순을 찾아내는 것은 오직 인간 교열자의 집요한 눈과 정성 어린 기록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사전조차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문학의 언어는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통용되는 규범을 뛰어넘어 작가 고유의 문체로 변형되곤 합니다.


교열 현장에서는 언어의 정석을 지키는 것과 작가만의 독창적인 표현 욕구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치열한 조율이 일어납니다. 단어를 검토하는 일은 결국 그 단어를 선택한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대화입니다.


독자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서사와 감정의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교열자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전개에 빠져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순간, 오히려 이상한 부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감정적으로 몰입해서도 안 됩니다. 작가의 문장을 무조건 옹호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쳐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바로 작품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위치입니다.


교열이라는 일이 의외로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글자만 보면 해결될 것 같지만 글자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에서 나옵니다. 글자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그 글자가 나온 배경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작성하는 등장인물 연표와 관계도를 보면 이 작업이 단순한 오탈자 수정을 넘어 얼마나 거대한 지적 탐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픽션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의 맥락과 연결되는 순간, 팩트의 왜곡이 없어야 독자의 몰입이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아무런 턱에 걸림 없이 완벽한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도록 만들기 위해 교열자는 스스로 객관성의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요즘은 문장 교정과 편집 영역에서도 자동화 알고리즘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쵸사의 교열부 사람들은 종이 교정지 위에 붉은 펜으로 글자를 써가며 아날로그적인 싸움을 계속합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영역에 숨어드는 오류는 역설적이게도 규칙 기반의 프로그램이나 안일한 스캔 작업이 가장 쉽게 놓치는 허점입니다.


AI는 사전에 입력된 규칙과 데이터의 확률에 따라 글자를 기계적으로 스크리닝하지만, 문맥에서 작가가 느꼈을 주관적 망설임이나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미묘한 약속, 혹은 독자가 책을 펼쳤을 때 느낄 실체적인 위화감까지 감지해내지는 못합니다.





책을 교열한다는 것은 오직 틀린 맞춤법을 찾아내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의 난해한 손글씨 원고를 읽어내기 위해 필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온 의도를 헤아려 맞춤법 이상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계산기가 아니라, 문장 뒤에 숨은 사람의 온기를 알아채는 인간의 서사 이해력이 개입할 때 비로소 한 권의 책은 완성도를 얻습니다.


신쵸사가 교열부는 5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빨리 만들고 쉽게 버리는 시대, 100년 뒤에도 남을 완벽한 한 권을 위해 붉은 펜을 드는 보이지 않는 장인들입니다. 교열자가 하는 일이 사소한 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일처럼 보이지만, 책 전체의 신뢰도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디지털 스크린 속의 텍스트는 쉽게 수정되고 삭제되지만, 한번 인쇄되어 물성을 얻은 종이책은 수정할 수 없는 파노라마로 남아 책장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기에 그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숙련된 장인처럼 나사를 조이고 실밥을 정돈합니다.


작가의 이름과 표지 디자인만 기억할 뿐,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작가의 말버릇 하나까지 존중할지 고칠지 고민한 사람의 존재는 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는 늘 완성된 모습으로만 만나던 책의 뒤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원고가 완성된 '책'이라는 결정체로 탄생하기까지의 디테일한 공정과 직업 의식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재미를 만끽해봅니다. 출판사 교열부의 일상을 다룬 오피스 만화를 넘어, 모든 보이지 않는 전문가들을 향한 뜨거운 헌사이자 응원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