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페마 초드론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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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은근히 삶과 거래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돌아와야 하고, 착하게 살면 좋은 사람이 곁에 남아야 하며, 노력한 만큼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계산서를 찢어버립니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틀어지고, 진심을 다한 관계가 멀어지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칩니다. 그럴 때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세상을 탓하게 됩니다.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제목은 냉정합니다. 삶에게 권리를 요구하지 말라니 야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108개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의미가 반대로 다가옵니다. 삶이 나에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매번 무너질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고통이 사라지는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괜찮아지는 방법보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방법이 더 필요한 시대에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저자 페마 초드론은 미국에서 태어나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중 이혼이라는 삶의 변화를 경험했고, 이후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며 초감 트룽파의 제자가 되어 수행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 정식 비구니계를 받은 최초의 미국인 여성이기도 합니다.


페마 초드론의 문제의식은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괴로워진다는 걸 짚어줍니다. 이별했으면 안 되고, 실패했으면 안 되고, 불안해서도 안 되고, 화가 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명령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불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불안이 사라진다면 심리학은 필요 없어질 테지요.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부터 살펴봅니다.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있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비난이나 실직, 관계의 균열을 마주했을 때 상황을 급히 무마하려 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습관적 반응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발밑의 땅이 사라지는 듯한 불안 속에서도 그저 자리를 지키며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려움과 원망, 질투라는 감정에 습관적 반응으로 대하지 않고, 알아차림의 자양분으로 삼을 때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자괴감에 빠진 날,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며 자책하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저 ‘지금 내가 깊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다정히 관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이트리(무조건적인 자애)의 시작입니다. 스스로의 결점까지 다정하게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실용적 가르침의 정점은 독특한 마음 훈련법인 통렌(주고받기 수행)입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과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분리하지 않고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무례한 행동을 하는 타인을 만났을 때 분노로 치닫기보다, 저 사람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이겠구나 하고 호흡을 내쉬는 훈련은 자기중심적인 에고의 벽을 점차 무너뜨려 줍니다.


고통이 나만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순간 고통의 무게가 커집니다. 외로움은 나는 관계를 못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기평가가 되는 순간 더 아파집니다. 실패는 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되는 순간 더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고통을 없애면 행복해진다는 믿음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현실에서는 고통과 행복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실이 두렵고, 소중하기 때문에 이별이 아픕니다.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잃을까 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기쁨이 커질수록 그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따라옵니다.


"고통은 형벌이 아니며, 기쁨은 보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제목과도 연결됩니다. 삶이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면, 고통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보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 관점은 실패했을 때 자기비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내가 부족해서라고 해석하는 대신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8개의 가르침이 두세 페이지 정도의 짧은 호흡으로 구성되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되고,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어도 됩니다. 108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108번뇌나 108배처럼 익숙한 수행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정답집이라기보다 반복해서 사용하는 마음 도구입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한 페이지를 펼쳐 읽고, 명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저자가 알려주는 명상은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입니다. 명상 자세의 여섯 가지 기준을 다루고, 생각을 비눗방울처럼 바라보며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생각은 생겨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모두 사실로 믿고 따라가느냐입니다. 나는 실패할 거라는 생각과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지금 떠올랐어는 전혀 다른 문장입니다.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기면 마음이 선택할 여지가 생깁니다.


삶을 원망하느라 소진되지 말자는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고통을 만났을 때 회피하거나 저항하거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기존 습관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삶은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나 역시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 순간 삶과 싸워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 사이에 아주 넓은 공간이 생깁니다. 페마 초드론이 말하는 자유는 그 공간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평온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힘입니다.


발밑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행복해지려고 애쓰기보다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삶과 싸우느라 삶을 놓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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