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윤채근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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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 속 경성을 복원해 낸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첩보 느와르물 독립운동소설입니다. 역사의 빈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를 만나보세요.


소설은 1980년대 후반 외과의사 김욱이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한 통의 유서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건 1942년 가을 운명처럼 시작됐다"는 해방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비극적 역사에 휩쓸린 인간들의 삶의 흔적을 쫓는 신호탄이 됩니다. 의사 김욱이 어머니의 유서를 통해 부모 세대의 비극을 비로소 마주하듯, 경성의 흔적을 쫓으며 읽는 내내 감정적 울림을 받게 됩니다.


살아남기 위해 타협했던 사람들, 자신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정의를 믿었지만 제국의 경찰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처럼 회색지대 인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제목 '페이퍼 체이스(Paper Chase)'는 종이를 떨어뜨리며 도망가는 사람과 그 흔적을 따라가는 술래의 게임을 뜻합니다. 임시정부 산하 조선의용대 출신의 광복군 김혁이 경성에 잠입해 수행하는 비밀 작전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에서 종이는 문서이면서 기억이고, 흔적이며 진실입니다. 소설은 흩어진 종잇조각을 따라가듯 인물들의 삶을 하나씩 연결하며 역사의 퍼즐을 완성하게 됩니다.


김혁이 수행하는 임무는 경성 사교계의 중심이자 총독부 최고 권력자 다나카 정무총감의 양녀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의 최고 권력자 아래서 길러진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구출 작전은 아군과 적군이 명확히 갈린 싸움이 아닙니다. 전쟁 지속을 노리는 도조 내각과 종전을 추진하는 이들 사이의 권력 암투가 얽히고설킨 함정 속에서 전개됩니다.


김혁은 단서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안내인을 찾으며, 마치 술래가 떨어져 있는 종잇조각을 주우며 보이지 않는 목표를 쫓듯 위태로운 걸음을 옮깁니다. 첩보물 장르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들과 청년들의 혼란스러운 운명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은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냅니다. 의열단장을 동경해 뜨거운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스무 살 청년 김혁은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극한으로 억제해야만 하는 공작원의 숙명을 마주합니다.


독립운동이라 하면 용기와 희생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공작원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지우는 능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윤채근 작가는 영웅을 이상화하지 않고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을 보여줍니다.


마음을 비워내고, 심지어 마음이 없다는 생각조차 지워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1942년 경성의 밤. 역설적이게도 이 느와르 공간 속에서 인간적인 신뢰의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정의감 넘치는 일본인 무도가, 독립운동가였다가 가족을 위해 밀정이 된 불곰 등 광복군과 일본 경찰, 권력자와 첩자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서사가 펼쳐집니다. 저마다의 결핍된 사랑과 삶을 지키기 위해 운명에 맞선 자들의 처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은 역사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점 같은 존재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주저흔 같은 망설임과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미스터리 서사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시대를 고뇌하는 내면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자취 없이 공기처럼 살아야 했던 시대, 흩어진 종잇조각을 쫓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경성의 숨바꼭질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누가 옳았는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인물들을 쉽게 심판하기보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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