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
오승욱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공간 디자이너 오승욱의 『나는 나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인테리어 책인 척하지만, 사실은 자기 이해에 관한 책입니다.


무아공간 대표로 연간 2,000명의 상담을 소화하고, 29만 유튜브 구독자에게 공간 철학을 전파해온 저자는 20년 넘는 현장 경험에서 한 가지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집이 불편한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공간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문제였습니다.


이 책은 평수나 자재, 시공 비용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대신 "왜 생각도 취향도 다른 사람들이 남들과 똑같은 집에 살려고 할까?"라는 질문을 책 전반에 걸쳐 던집니다.


나다운 공간의 기준은 한국 주거 문화의 역사적 맥락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사회적 성취의 증거로 자리잡은 과정을 짚어냅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아파트가 성공의 증거가 된 순간부터,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보여주는 곳이 됐습니다.


직선 라인, 무채색 팔레트, 미니멀한 구성. 이 모두는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좋아 보이는 집의 공통 문법입니다. 문제는 그 집에 실제로 사는 사람이 행복한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색채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습니다. 색은 공간의 온도를 바꾸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까지 바꾼다는 것을요. 색은 분위기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장치라고 말입니다.


화이트와 그레이가 유행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색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 인스타그래머블한 밝은 거실은 실제로 불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심미적 감각이기 이전에 신경학적 편안함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이 감각을 무시한 채 유행을 좇는 것이 공간과 삶 사이의 불일치를 만들어낸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취향을 효율의 문제로 정의합니다. 기준이 없으면 매번 처음부터 고민해야 하는 반면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선택이 빠르다고 합니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을 걸러낼 수 있기에 삶이 덜 흔들린다고 합니다.


『나는 나다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집의 각 공간을 삶의 서사로 읽어냅니다. 현관, 거실, 주방, 욕실, 침실, 자녀 방, 발코니까지 각 공간에 붙은 인문학적 해석이 빛납니다.


현관이라는 단어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현(玄)은 어두울 현. 관(關)은 문이자 경계, 관문. 두 글자가 합쳐진 현관은 바깥의 세계에서 가장 내밀한 나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문턱입니다. 물리적으로 보면 현관은 외부와 집을 연결하는 경계 공간이지만, 감각적으로 보면 이곳은 사회적 나와 진짜 나가 맞닿는 지점이 된다고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관이 어수선하다는 것은 단순히 정리가 안 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회적 자아와 내밀한 자아 사이의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신호인 겁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도 일의 긴장감이 풀리지 않는 사람은 현관 공간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감정을 만들며, 감정은 관계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가족이 모이는 동선을 설계하면 만남이 늘고, 흩어지는 동선을 설계하면 각자도생이 된다는 겁니다.





1인 가구에 대한 시각도 신선합니다. 나중에 더 넓은 집 생기면 제대로 살겠다는 심리가 현재의 삶을 어떻게 유예시키는지를 짚으면서, 저자는 3평짜리 방도 충분히 나다운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반려동물과의 공존에 관한 조언도 실용적입니다. 펫테리어의 핵심은 구역 설정입니다. 어떤 문은 패널을 달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어떤 공간은 물리적으로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이 단순한 구분이 집의 안전과 평화를 만든다고 합니다.


가구별 솔루션 중에서도 가장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은 바로 노인 가구(실버 세대)를 향한 시선입니다. 노년기 주거 공간에서 가장 치명적인 위험 구역으로 욕실을 꼽으며, 실제 시공 현장에서 적용되는 아주 실용적이고 필수적인 안전 가이드라인을 도면과 사진을 통해 보여줍니다.


저자는 몰입, 질서, 휴식, 욕망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공간과 삶의 밀도를 연결합니다. 특히 정리에 관한 시각이 유용했습니다.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가지런히 두는 기술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면 질서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쉼과 회복을 구분하는 시각도 독특합니다.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넘기는 것은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복은 아닙니다. 공간이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할 때 비로소 회복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내향형과 외향형에 따라 최적화된 공간이 다르다는 칼럼도 와닿습니다. 같은 가족이라도 성향이 다르면 필요한 공간이 다르다는 분석은, 왜 어떤 집이 누군가에게는 완벽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숨막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저자 오승욱은 자신의 주거 편력을 솔직하게 공개합니다. 유년의 마당 있는 집, 20대의 월세 12만 원짜리 3평 자취방, 30대의 문래동 폐공장, 그리고 지금의 청담동 사옥까지. 각 공간에서 저자가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가장 좁고 초라한 공간에서도 나다운 것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축적이 지금의 철학을 만들어냈습니다. 공간을 몸으로 살아낸 사람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겼습니다. MBC 〈구해줘! 홈즈〉, EBS 〈클래스e〉, SBS 〈홈데렐라〉 출연과 삼성·LG 등의 자문 요청이 이어지는 배경에는 이 현장감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