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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쓰는 예술가 - 예술가와 창작자를 위한 연구 입문서
안성아 지음 / 여가로운삶 / 2026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예술과 데이터.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영역의 접점을 평생에 걸쳐 모색해 온 안성아 교수의 『논문 쓰는 예술가』.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경영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차가운 이성의 데이터 과학자가 인간의 가장 뜨거운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문화예술 분야로 향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겪은 수많은 예술가 제자들의 사투와 고뇌를 바탕으로, 그들의 창작 에너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학술적 무기를 쥐여주기 위해 집필한 연구 입문서입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은 윤다영 작가의 표지 그림 〈비우며 채우며〉입니다. 세밀한 펜화는 예술가이자 연구자로서 마주하게 되는 복잡다단한 정신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어지럽게 뒤엉킨 카오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저마다의 궤도를 지키며 정교한 질서를 이루어가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와도 같습니다. 자기만의 언어와 질서로 우주를 재편해가는 예술가들의 사유의 풍경화입니다.
창작자가 논문이라는 단어와 마주하는 순간, 심리적 위축감을 토로하곤 합니다. 저자는 좋은 작품과 잘 쓴 논문은 관객과 독자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를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예술가가 무대 위나 캔버스 위에 점 하나를 찍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세상에 대한 거대한 의문 제기입니다. 저자는 예술가들이 이미 훌륭한 연구자의 유전자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그렇기에 연구설계란 오히려 자신이 구축해 온 예술적 세계관을 타인에게 객관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한 입체적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입니다. 한 장의 연구계획서는 작품을 올리기 전 무대 평면도를 그리는 것과 완벽히 동형의 프로세스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논문은 예술가의 강력한 무기로 재탄생합니다.

먼저 연구 질문을 세우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추상적인 미학적 담론이나 예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 담론은 학위논문의 출발점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연구는 현미경의 초점을 좁히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저자는 창작자가 흔히 범하는 오류인 지나치게 넓고 모호한 주제를 명확하고 입증 가능한 연구 질문으로 전환하는 세 가지 출발점을 짚어줍니다.
연극 관객의 심리라는 막연한 주제는 연구가 될 수 없지만, 소극장 연극에서 무대와 객석의 물리적 거리가 관객의 감정적 몰입도에 미치는 영향으로 좁혀 잡는 순간 비로소 학술적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창작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의식, 즉 관객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갈증이나 작품 판매 및 티켓 가격 책정 과정에서의 의문들이 모두 훌륭한 원천이 됩니다. 연구란 우주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아주 작은 구역의 미스터리를 완벽하게 풀어내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질문이 선명해졌다면, 이제 그것을 학술적 언어로 구조화하는 밑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가설 설정과 변수의 도출, 그리고 이들의 인과관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연구모형의 설계가 포함됩니다.
연구의 뼈대를 세웠다면 이제 세상을 바라볼 관측 도구, 즉 렌즈를 선택해야 합니다. 학계에서는 질적연구와 양적연구라는 두 축으로 분류합니다. 미학적 비평이나 심층 인터뷰, 참여 관찰을 통해 텍스트의 깊은 맥락 짚어내는 이야기의 렌즈(질적연구)는 예술가들에게 친숙하고 매력적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의 렌즈가 가진 주관적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숫자의 렌즈(양적연구), 그리고 이 둘을 결합한 혼합 연구의 폭발적인 파괴력에 주목하라고 조언합니다. 개별 예술가의 깊이 있는 인터뷰로 가설을 탐색하고, 이를 대규모 설문조사라는 숫자로 객관화하여 일반화하는 작업이야말로 현대 문화예술 연구가 지향해야 할 가장 입체적인 지형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내밀한 미적 감동이나 만족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어떻게 수치로 치환할 수 있을까요? 『논문 쓰는 예술가』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번역의 과정을 다룹니다.
저자는 명목척도, 서열척도, 등간척도, 비율척도라는 네 가지 측정 도구의 특성을 설명합니다. 수집된 설문 데이터를 통계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있도록 부호화하는 코딩과정까지 거치고 나면, 예술가의 감각은 비로소 통계적 검증이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탈바꿈합니다.
우리는 늘 이 결과가 단순히 어쩌다 일어난 우연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진짜 법칙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합니다. 수집된 데이터가 엑셀 시트를 가득 채웠을 때, 아득한 현기증을 느낍니다. 걱정마세요. 통계 프로그램이 계산을 대신해 주기 때문에, 연구자는 오직 해석의 눈을 기르면 됩니다.
통계 분석이 끝났다면 이제 학계의 표준 관습에 맞춘 텍스트 구조물로 빌드업해야 합니다. 저자는 논문의 전체 구조를 영화 시나리오나 기승전결을 가진 하나의 내러티브 예술 작품으로 접근하라고 조언합니다. 더불어 최근 연구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는 생성형 AI 툴의 활용법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마지막으로 고된 집필 끝에 탄생한 논문을 학술대회나 등재지에 게재하고, 엄격한 학위논문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실전 팁을 다룹니다. 그리고 마침내 학위라는 종착지를 넘어, 그 연구의 언어가 다시 자신의 본업인 창작 현장과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지향점까지 조언합니다.
자신의 예술적 직관과 창작 프로세스를 대중, 기획사, 국책 공모사업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데이터의 언어로 프리젠테이션하고 확장할 수 있는 실용적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창작의 직관을 연구의 언어로 바꾸는 다정한 안내서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