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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미역국 ㅣ 웅진 우리그림책 153
염혜원 지음 / 웅진주니어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왜 우리는 생일마다 미역국을 먹을까요? 케이크와 촛불, 선물은 이해가 되는데 한국의 생일상에는 미역국이 빠지지 않습니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음식. 염혜원 작가의 『나의 첫 번째 미역국』은 그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입니다.
볼로냐 라가치상, 에즈라 잭 키츠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온 염혜원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생활 속 풍경을 통해 깊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생일이면 먹고 싶은 음식이 많습니다. 초콜릿 케이크도 있고, 피자도 있고, 햄버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늘 미역국을 끓여 줍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꽤 이상한 일입니다. 생일은 분명 자신이 주인공인 날인데 왜 축하 음식이 하필 미역국일까요?
아이의 눈에 비친 미역국은 예쁜 케이크와 달리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나고, 미끌미끌한" 정체불명의 음식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게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생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씩 이동합니다.
처음에는 나의 생일이 중심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시선은 엄마가 나를 낳은 날로 향합니다. 생일이란 한 사람의 탄생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부모가 된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대는 자신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 준 시간에 대해서는 의외로 자주 잊곤 합니다. 『나의 첫 번째 미역국』은 그 잊힌 시간을 조용히 꺼내듭니다.
염혜원 작가가 이국땅인 미국에서 아이를 출산했을 때, 친정어머니가 한국에서부터 수하물 무게 제한을 채워가며 가져온 길고 단단한 산모용 미역을 한 달 내내 뭉근하게 끓여주었던 기억이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이가 미역국을 휘휘 저으며 투덜거리자, 엄마는 자신의 기억을 꺼내어 놓습니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화면은 달력 구조의 프레임으로 바뀝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칸칸이 채워진 그림 속에서 엄마는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땀방울을 흘리며 끊임없이 미역국을 먹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돌봄의 누적성을 멋지게 보여줍니다. 매일 똑같은 국을 먹으면서도 아기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그 곁을 지키며 국을 나르는 친정어머니의 모습이 중첩되면서, 미역국은 치유의 의식이 됩니다.
엄마의 이야기는 외할머니를 넘어 더 깊은 과거의 시간, 제주의 푸른 바다로 나아갑니다. 화면 가득 푸른 수채화 물감이 번지며 테왁을 든 해녀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여기서 제주 해녀의 강인함을 모성과 연결합니다.

만삭의 몸으로 차가운 바닷속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해녀의 모습은 숭고하면서도 눈물겨운 생명 부양의 현장입니다. 그리고 속 표지에 그려진 고래와 관련한 설화가 자연스럽게 얹어집니다. 돌봄의 서사가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
내리사랑의 연쇄 고리는 뭉근하게 끓고 있는 미역국 냄새를 통해 현재의 식탁으로 고스란히 배달됩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희생적 모성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습니다. 염혜원 작가가 그려낸 해녀들과 어머니들의 모습은 희생자가 아닙니다. 바다와 맞서 싸우며 생계를 책임지는 주체적인 생산자이자 동시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능동적인 돌봄의 주체들입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위대한 바다의 유산, 우리는 모두 한 그릇의 사랑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만을 위한 그림책이 아닙니다. 생일마다 미역국을 끓여준 엄마가 있는 모든 어른에게 깊이 닿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