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식물 도감 - 전 세계 760여 종 식용 식물 총망라!
윤주복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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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트 채소 코너에서 브로콜리를 집어 들 때 가격표만 봅니다. 식물의 계통이나 원산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길들여 식탁에 올리게 되었는지까지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지요. 그런데 『먹는 식물 도감』을 펼치는 순간, 평범한 식재료였던 감자와 들깨, 카카오와 계피가 모두 인류 문명의 공동 저자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식물생태연구가 윤주복 작가는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비며 식물을 기록해 왔습니다. 다양한 식물 도감과 해설서를 통해 국내 자연도감 분야에서 독보적인 작업을 이어온 인물인데, 이번에는 먹는 식물에 집중합니다.


기존의 식물 도감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식문화와 생태, 역사와 취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식물을 다시 읽게 만드는 식탁의 인문학 도감에 가깝습니다.


760여 종의 식용 식물과 1300여 컷의 사진이 담겼습니다. 그동안 음식을 완성된 요리 상태만 바라봤다면 『먹는 식물 도감』은 요리 이전의 세계인 씨앗과 뿌리와 줄기와 꽃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인류가 수렵 채집의 유목 생활을 청산하고 정착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을 이룩하게 만든 위대한 주인공부터 소개합니다. 곡류와 아곡류 그리고 두류로 세분화하여 식탁의 가장 근원적인 뼈대를 분석합니다.


보리나 콩은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그 존재 가치를 잊기 쉬운 식물들입니다. 저자가 포착한 잘 여문 보리 사진과 보리 이삭, 유연보리 이삭의 대비를 보고 있으면, 식물이 거친 자연 환경에서 자신의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를 변경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낱알열매 끝에 수염처럼 길게 벋은 까락의 거친 질감은 사진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6줄로 둘러나는 여섯줄보리와 2줄로 둘러나는 두줄보리의 구조적 차이는 인류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어떤 식물을 선택하고 개량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문명의 흔적입니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빛 감 말리기 사진은 온대 기후의 계절 변화가 식물에게 부여한 축복을 상징합니다. 타닌 성분의 떫은맛을 극복하기 위해 홍시로 연화시키거나 껍질을 벗겨 겨울 바람에 말려 내는 곶감의 제조 과정은, 가죽질의 두꺼운 잎을 지닌 감나무가 가을이라는 계절의 정점에서 인간에게 제공하는 가장 달콤한 농축 원액인 셈입니다.


두리안, 람부탄, 잭프루트, 용과, 카카오 등 이름은 알아도 살아있는 식물의 모습을 본 적 없었기에 현장 사진은 감각의 확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카카오 열매가 나무줄기에 직접 달리는 모습을 보니 신기합니다. 마카다미아, 피칸, 캐슈너트의 나무 전체 형태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채소류는 가장 방대하게 펼쳐집니다. 열매채소, 뿌리채소, 잎줄기채소에서부터 식용꽃, 산나물, 그리고 버섯과 바닷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반찬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섭취하는 초록색 생명력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칩니다.


두류 파트에서 다뤄지는 콩나물 역시 흥미롭습니다. 콩을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발아시켜 비타민 C를 폭발적으로 길러낸 인류의 지혜는 척박한 계절을 버티기 위한 생태학적 생존 전략의 정점이었음을 깨닫게 만듭니다.


향신료와 허브 파트는 매혹적인 향취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생강과의 식물들이 펼치는 지하 세계의 은밀한 반란은 미식가들이 왜 그토록 향신료에 열광하는지 그 생태적 이유를 밝혀줍니다. 카레의 황금빛을 만들어내는 강황과 울금, 그리고 토종 식재료인 양하와 생강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당분을 얻는 식물, 즙을 얻는 식물, 녹말을 이용하는 식물, 기름을 얻는 식물, 기호품을 얻는 식물, 차로 이용하는 식물, 식용으로 널리 이용하는 약용 식물까지. 인간이 식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와 물질을 추출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도감이란 형식에 충실합니다. 용어 해설과 학명 정리가 잘 되어 있습니다. 2회깃꼴겹잎, 간생화, 결구 같은 낯선 식물학적 용어들이 친절한 해설을 통해 내 삶의 단어로 들어오게 됩니다. 자두나무부터 질경이, 차나무에 이르기까지 가나다순으로 빽빽하게 정리된 식물 이름 찾아보기 인덱스는 마트에서 산 식재료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언제든 그 식물의 진짜 얼굴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내비게이션입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문명을 지탱하고 기후와 투쟁해 온 위대한 식물의 연대기를 만나는 시간 『먹는 식물 도감』. 한 끼 식사 속에는 수천 년 식물의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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