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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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정말 안타깝네요" 혹은 "너무 축하드려요"라는 말을 내뱉고 뒤돌아서서 공허함을 느낀 적이 없으신가요? 80여 년 전 알베르 카뮈가 세상에 내놓은 문제적 인물, 뫼르소는 거짓 감정의 연기를 거부했습니다.


부조리 철학의 정수인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세상의 관습적 도덕과 충돌하며 파멸해가는 과정을 다룹니다. 리프레시판 『이방인』은 감각적인 흑백 일러스트를 통해 작품의 독특한 정서를 시각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알베르 카뮈. 아버지를 전쟁터에서 잃고 청각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카뮈의 인생은 찬란한 지중해의 빛과 죽음의 그림자가 공존하는 모순 그 자체였습니다.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폐결핵이라는 질병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철학자 장 그르니에를 만나며 사유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정치적 추방을 겪기도 하고,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하는 등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195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정작 본인이 "가장 부조리한 죽음"이라 말했던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그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부조리극과도 같습니다.


소설의 포문은 문학사상 가장 논쟁적인 문장으로 열립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패륜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카뮈가 창조한 뫼르소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기를 거부하는 인물일 뿐입니다.





장례식장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하고, 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무너져야 하는 게 정상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뫼르소는 요양원에서 온 전보의 날짜가 어제인지 오늘인지가 사실관계로서 중요할 뿐, 그것을 슬픔의 크기로 환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겪는 감정 노동에 대한 카뮈 식의 원형적 저항입니다. SNS에 올릴 슬픈 사진을 고르는 우리보다 어쩌면 뫼르소가 훨씬 더 투명한 영혼을 가진 것은 아닐까요?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도, 시신을 확인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바로 다음 날, 해변에서 전 직장 동료인 마리와 데이트를 하고 희극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이후 뫼르소는 이웃인 레몽의 치정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레몽은 아랍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었고, 뫼르소는 그와 함께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뒤쫓아온 아랍인들과 마주칩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과 아랍인이 든 칼날의 번뜩임에 압도된 뫼르소는 권총으로 아랍인을 사살합니다.


뫼르소가 겪은 감각의 폭주는 태양 때문입니다. "햇볕, 가죽과 말똥 냄새, 니스 냄새와 향 냄새, 그리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피로가 뒤섞여 시야와 생각을 흐리게 했다."라든가 "나는 오직 이마 위에서 울려 퍼지는 태양의 징 소리와, 여전히 내 앞에서 번뜩이는 칼날의 섬광만을 희미하게 느낄 뿐이었다. 불타는 칼날이 속눈썹을 파고들며 아픈 눈을 찌르는 듯했다 그 때 모든 것이 흔들렸다."라고 말이죠.


카뮈는 인간이 얼마나 환경과 우연에 취약한 존재인지를 드러냅니다. 뫼르소의 총신이 흔들린 것은 계획된 범죄가 아니라, 우주적 부조리와 개인의 감각이 충돌한 찰나의 사고였던 셈입니다.


『이방인』의 후반부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다룹니다. 검사는 뫼르소의 살인 행위 자체보다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 날 여자친구 마리와 수영을 하고 희극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에 더 집착합니다.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사회 체계가 사실은 개별 인간의 진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라는 대본을 얼마나 잘 따랐는지를 심판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뫼르소는 살인자라서 사형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슬퍼하는 아들의 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카뮈는 서문에서 뫼르소에게 씌워진 오해를 끄집어냅니다.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도 끝내 자신의 진실(거짓 감정을 연기하지 않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짓말하기를 거부한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아니 무엇보다도,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일이며, 인간의 마음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일이다."라고 말이지요.


뫼르소는 그 '조금 더 말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라는 성벽 밖으로 밀려난 이방인이 됩니다. 우리가 적당한 감정적 타협에 얼마나 안주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뫼르소의 행보를 목격하다 보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상동기범죄의 가해자가 떠오르는 건 막을 수 없습니다. 태양 때문에 죽였다는 뫼르소의 답변이 그저 무책임한 가해자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는 범죄보다 더 위험하게 취급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적 기대에 맞춰 슬퍼하지 않는 태도. 『이방인』은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가 한 인간을 심판하는 방식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연기하느라 잃어버린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지, 사회가 규정한 정답이 과연 나의 진실보다 중요한지 묻고 있는 『이방인』.


하지만 뫼르소처럼 태양 아래에서 온전히 눈을 뜨고, 세계의 부조리를 기꺼이 껴안아 볼 자신은 솔직히 서지 않습니다. 마음으로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으면서도 말이지요. 생각할수록 이 괴리 또한 참 부조리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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