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
팀 하포드 지음, 윤영삼 옮김 / 윌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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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팀 하포드는 《경제학 콘서트》를 통해 경제학이 단순히 숫자의 놀음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선택을 읽어내는 학문임을 증명하며 전 세계 1000만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 인간 행동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경제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스키아상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원서 출간 10주년을 맞아 한국어판 특별 서문을 새롭게 더한 이번 신작,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를 통해 거장 팀 하포드의 지적 귀환을 마주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질서의 시대를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손안의 알고리즘이 내가 좋아할 만한 뉴스를 골라주고, AI가 최적의 이동 경로를 알려주고, 스마트 기기는 일상의 모든 마찰을 제거하려 듭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상은 더 시끄럽고, 우리는 더 불안합니다. 팀 하포드는 이 모순의 해답을 우리가 그토록 지우려 했던 '불완전함'에서 찾습니다. 효율과 최적화라는 명제 아래 억눌린 인간의 본성이 사실은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열쇠라는 겁니다.


2009년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참사 사례로 포문을 엽니다. 완벽하다고 믿었던 자동항법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기상 변화에 수동 모드로 전환되었을 때, 시스템에 길들여진 조종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대응 능력은 퇴화하는 자동화의 역설이 발생한 겁니다.


인간의 뇌는 모호함을 처리하도록 진화해왔지만, 알고리즘은 모호함 자체를 제거하려 합니다. 분류할 수 없는 것은 강제로 분류되고, 불확실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포장됩니다. 그 과정에서 현실은 왜곡되고, 시스템은 스스로의 정확성을 과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정리정돈과 질서에 집착할까요? 팀 하포드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사례를 듭니다. 역사상 가장 결단력 있는 인물이었던 프랭클린조차 자신의 서류 뭉치와 무질서한 다이어리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손꼽히는 프랭클린은 60년 동안 그토록 노력을 쏟았음에도 자신의 집과 다이어리는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한평생을 무질서 속에서 보냈음에도 프랭클린은 여전히 질서를 순수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성격의 단점을 고쳐서 덜 무질서해질 수만 있다면 더 존경받고 더 성공적이고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여겼다."


프랭클린이 서류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면, 과연 더 위대한 삶을 살았을까요? 우리는 정리된 책상, 색깔별로 분류된 캘린더, 일목요연한 투두 리스트가 더 나은 성과를 보장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하포드가 수집한 증거들은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창조적 성취는 종종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공간에서 탄생했습니다. 뒤죽박죽 쌓인 메모 더미, 예상치 못한 자극의 교차, 그 혼돈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무질서가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이 잉태되는 비옥한 토양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통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 상태가 엉망인 피아노로 역사적인 공연을 남긴 키스 자렛의 사례를 통해 즉흥성의 가치를 논합니다. 만약 자렛이 완벽한 조건만을 고집했다면 그 위대한 연주는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철저한 준비만이 성공의 담보라고 믿지만, 실제 세상은 준비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예상치 못한 오류와 마찰이 발생했을 때, 이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함을 이용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이 인간만의 고등 전략입니다.


2014년 런던 지하철 파업의 사례도 재밌습니다. 스무 명 중 한 명은 파업 기간 동안 찾아낸 새로운 경로를 파업이 끝난 뒤에도 이용했습니다. 새로운 경로가 이전 경로에 비해서 교통비가 적게 들거나, 더 빠르거나, 또 다른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강제된 혼란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지를 발견하게 했습니다. 인간은 익숙한 경로를 최선이라 믿습니다. 그 믿음을 깨뜨린 것은 파업이라는 불편한 방해였습니다.


팀 다양성에 관한 연구 결과는 직관을 정면으로 거스릅니다. "마음이 잘 맞으면서 높은 성과를 내는 팀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 다양성이 있는 팀이 높은 성과를 내지만, 그 팀에 속한 구성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확신하지 못하고 진행 과정을 의심하며, 전반적으로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여긴다. 동질성이 높은 팀은 성과는 낮지만 만족감이 높다."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불편한 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팀워크가 좋다는 느낌을 성과의 신호로 읽습니다. 회의가 매끄럽게 흘러가고, 의견 충돌 없이 결론에 도달하면 잘 굴러가는 팀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데이터는 그 반대를 가리킵니다. 마찰이 없는 팀은 편안하지만 정체되어 있는 겁니다.


질서는 효율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취약성을 증가시킵니다. 생태계에서도 단일 품종의 질서 정연한 숲은 병충해 한 번에 전멸하지만, 무질서하고 다양한 숲은 살아남습니다. 하포드는 과도한 최적화가 회복탄력성을 앗아간다고 경고하며, 시스템 속에 일부러 여유와 틈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흥미롭게도 '미루기'조차 우리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그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후회와 권태에서 기인한 절망적인 기분은 우리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경고일 때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불완전함에 대하여』는 혼란과 무질서가 모든 삶의 문제의 해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함이 갖는 실질적 기능과 전략적 가치를 분석해 보여줍니다.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하나의 기술로서의 불완전함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입니다. 완벽한 조건은 종종 우리를 안이하게 만듭니다. 불완전한 조건이 우리를 깨웁니다.


AI가 시대에 인간이 더욱 갈고닦아야 할 능력은 즉흥성, 모호함을 견디는 힘, 실수를 허용하는 용기입니다. 이것들은 효율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효율이 닿지 못하는 영역을 채우는 인간 고유의 역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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