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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
신은경 지음 / 샘터사 / 2026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KBS 9시 뉴스를 책임졌던 신은경의 신작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 이제는 카메라 앞이 아닌 인생의 해 질 녘 서재에서 말을 건넵니다.
70대를 목전에 둔 한 지성인이 노화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어떻게 하면 비루하지 않게, 어떻게 하면 명랑하고 기품 있게 삶의 속도를 줄여나갈 것인가를 고민한 기록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말하는 갓생이 노년 버전으로 구현된다면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의 작은 성실함을 통해 노년의 존엄을 구축해 나갑니다.
나이가 들면 무언가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근력, 시력,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 말이죠. 하지만 작가는 상실이 아닌 수용의 관점으로 전환합니다.
"제 얼굴에 주름 지우지 말아주세요. 이거 만드는 데 꽤 오래 걸렸거든요."라며 거울 앞에 선 자신의 주름을 대하는 태도가 인상적입니다. 노화를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훈장으로 만듭니다. 인위적인 보정으로 과거의 나를 붙잡아두기보다,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기품 있는 삶의 시작입니다.
더불어 잘난 척하지 마라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젊은 날의 화려한 경력은 뒤로하고, 이제는 자신을 향한 정직한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노년이 되면 약점을 비난하기보다 세상의 배려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느슨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함을 일깨워줍니다.
거창한 행운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지천에 널린 행복'에 주목합니다. 속도전의 세계에서 벗어나 비로소 정속 주행의 즐거움을 깨달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평온함입니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정신적 방어기제로서의 건강을 이야기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업무도, 부담도, 그럴 이유도 없다라며 적극적인 마음의 재구성을 합니다. 긴장과 집중을 요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 이제는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스스로를 세뇌(?)하는 성실한 다짐입니다.

통증이 없는 평범한 아침이 얼마나 경이로운 축복인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의 삶은 매일이 기적이 됩니다.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을 차리고 뇌 건강을 위해 슬기로운 방법을 찾는 행동들은, 나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인 셈입니다.
소유에 대한 철학은 저와 비슷해서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우리는 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작가는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좋은 그릇, 아끼는 옷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누려야 합니다. 물욕의 해소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가장 귀하게 대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행위를 인생의 의미 정리와 연결합니다. 소중한 것은 아끼지 말고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면서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나눔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물건은 남기지 말자고 말한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아직 한짐 가득이지만, 노년 시기의 정리 기준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정리는 나를 위한 존엄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매듭짓는 가장 다정한 방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품격과 삶의 마무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9시 뉴스 앵커로서 평생 정제된 말을 해왔던 그는 따뜻한 손길 같은 말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아름다운 단어의 힘은 절대 가볍지 않다고 말이죠.

젊은 시절 우리는 무언가를 끈기 있게 성취해내는 그릿(Grit)에 빠져삽니다. 하지만 노년의 작가는 이제 적절한 때에 줄을 놓아버리는 큇(Quit)의 지혜를 말합니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단계로 진입하는 자연스러운 이행임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매일 책 두 페이지를 읽고 세 페이지를 쓰는 사소한 성실함이 쌓여 위대한 삶을 만든다는 그의 믿음은, 깨지고 부서져도 회복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희망으로 나아갑니다.
신은경 작가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를 통해 나이 듦이 결코 시들어가는 과정이 아님을 들려줍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욕심을 걷어내고 가장 순수한 본질만을 남기는 정제 과정에 가깝습니다.
맑고 단정한 글이 마음을 다독입니다.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생의 후반전이 얼마나 명랑하고 기품 있을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