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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백 - 슬픔마저도
민도연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극을 넘어, 인간의 감정 중 가장 다루기 힘든 슬픔을 복수의 도구로 치환한 심리 스릴러 『페이백 슬픔마저도』. 오감을 자극해 활자 너머의 공포를 체감하게 하려는 민도연 작가의 묘사가 매력적인 소설입니다.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김동훈은 병실에서 눈을 뜨지만,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그의 시선을 따라 사건을 복원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기억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고통을 되찾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아내와 딸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초반에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밝히는 동시에, 왜 복수가 필요한가를 설득하는 단계입니다. 감정의 밀도를 쌓아갑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고, 복수를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반에 서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복수 계획이 전개됩니다. 기존 복수극과 다른 지점은 고통의 재현이 아니라 감정의 재현에 집중한다는 점이 매력적입다. 그들이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고통보다 더 큰 충격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작가는 남다른 복수의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물리적 응징이 아닌, 인간의 심리를 붕괴시키는 설계를 통해서 말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아바타 사냥은 독특한 장치입니다. 기억과 감정을 이용해 복수를 실행한다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정보 조작과 감정 소비 구조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경험이 도구가 되는 세계, 그리고 그 도구가 다시 폭력으로 환원되는 구조는 섬뜩할 만큼 현실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심리상담사 최재준의 역할은 단순한 조력자를 넘어섭니다. 그는 일종의 감정 엔지니어입니다. 그가 과연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에 놓이게 됩니다.
복수가 실행되며 각 인물들이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판사, 검사, 기업 회장, 회장의 아들까지 이들은 각각 법, 권력, 자본, 그리고 그 계승 구조를 상징합니다. 개인의 복수이자 시스템 자체가 응징의 대상이 되는 셈입니다.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인간을 움직이는 연료입니다. 그러나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할 경우, 인간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잊어버립니다. 이 소설은 기억과 생존 본능 사이의 균열을 파고듭니다.
대부분의 스릴러가 사건의 반전으로 놀라게 한다면, 『페이백 슬픔마저도』는 의미의 반전을 통해 인식을 뒤흔듭니다. 그동안 따라간 나의 시점, 그리고 믿어왔던 기억과 감정에서 반전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었는가, 감정은 과연 진실을 보장하는가, 복수는 정의로 귀결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뒤흔듭니다.
흔히 분노를 복수의 동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페이백 슬픔마저도』는 슬픔이야말로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가장 깊이 파고드는 감정임을 짚어줍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왜곡될 때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줍니다.
기억과 감정이 어떻게 인간의 선택을 지배하는지 펼쳐지는 『페이백 슬픔마저도』. 반전 중심의 서사를 좋아한다면 만족하실 겁니다.
무죄 판결 이후 시작된 전쟁, 법이 외면한 슬픔을 가해자에게 그대로 돌려준다는 민도연 작가의 장편소설 『페이백 슬픔마저도』. 기억 상실과 최면이라는 장치가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다중 시점이 교차하며 조각처럼 맞춰지는 서사 구조 그리고 마지막 대반전의 충격까지 스릴러 장르의 쾌감을 충족시키면서도,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