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헬렌 듀런트 지음, 황성연 옮김 / 서사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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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국에서만 누적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헬렌 듀런트의 국내 초역작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The Funeral』. 10년간 영국 범죄 소설의 최전선을 지켜온 작가는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비로소 드러나는 심리의 균열을 포착하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이 소설은 그 균열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자본이 잠식한 인간성을 파헤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장례식 초대장. 그곳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어떨까요? 이게 무슨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싶다가도,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은 단순한 당혹감을 넘어 원초적인 공포로 변할 겁니다.


주인공 앨리스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도시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도착한 보낸 이 없는 이메일 한 통.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 초대장이었습니다.


앨리스 앤더슨은 과거 사채업자의 추적을 피하려고 이름을 도나 슬레이드로 바꾸고 밑바닥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여기서 첫 번째 미끼를 던집니다. 잊힌 존재인 그녀에게 누가, 왜 연락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앨리스는 의심하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압권은 고인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무덤가로 다가가는 순간입니다.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새하얀 관 위, 황금색 명패에 큰 글씨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앨리스 앤더슨’ 바로 나다." - p11





내가 살아있는데, 저 관 속에 누워있는 앨리스 앤더슨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요? 나의 이름을 훔쳐 삶을 누리다 죽은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나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소비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앨리스는 도망치는 대신, 진실의 아가리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갑니다. 고인이 된 가짜 앨리스 앤더슨은 맥스의 비서로 일하며 화려한 삶을 살다 의문사한 인물이었습니다. 저택의 주인 맥스와 아내 타라, 부부의 딸 한나까지 저마다 위태로운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는 공포를 넘어선 생존 본능으로 치닫습니다. 작가는 인간성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갉아먹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앞서 던져졌던 복선들이 꿈틀거리며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언뜻 보면 툭툭 끊어지는 대화나 무미건조한 묘사 때문에 성기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수수께끼는 풀 수 있다고 자만하며 느슨하게 헤엄치게 둡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물을 확 조여버립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가 더 오래 남는 소설입니다. 소름 끼치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추악함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불쾌한 공간인 돼지우리에 대한 심리적 공포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자본이 배설한 추악한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헬렌 듀런트 작가 특유의 벼랑 끝 심리 묘사가 매력적인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앨리스는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비극적인 연극의 일부가 되어 안온한 죽음의 뒤편으로 사라질까요. 강렬한 심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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