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부란 무엇인가 - 개정증보판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칼럼계의 아이돌, 유려한 문체의 마법사로 통하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의 『공부란 무엇인가』. 이번 개정증보판은 새로운 에세이들을 더했습니다. 공부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자신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열망의 차원으로 보여줍니다.
공부를 왜 하나요? 취업을 위한 관문 정도로 여깁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수업의 목적은 여러분의 취업이 아니라 지적 변화라고 말합니다. 공부는 단순히 정보를 입력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질적으로 달라지는 일종의 화학 반응입니다.
"나는 현 상태에 안주할 생각인가, 아니면 좀 더 나아지려 할 것인가?" - 책 속에서

공부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저자는 유머를 건넵니다. 무언가를 죽기보다 하기 싫어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라고 말입니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 딴짓을 하다가 다른 분야의 대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공부에 대한 우리의 강박을 슬쩍 내려놓게 만듭니다.
하지만 진짜 공부를 시작하려면 능동성이 필수입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공부는 예속된 삶의 연장일 뿐입니다. 김영민 교수가 말하는 공부의 기대 효과는 바로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것.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자기 주관을 잃지 않고 꼿꼿이 서 있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지적인 헛소리를 걸러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기초적인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공부의 기본기는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읽고, 정리하고, 질문하는 구체적인 행위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효율성을 따지느라 검증된 책만 읽으려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공 점유율의 논리를 들며 다독의 중요성도 강조합니다. 수많은 텍스트 속에서 허우적거려본 사람만이 프란츠 카프카가 말한 자신만의 '도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기만의 인덱스를 만드는 자료 정리의 중요성도 짚어줍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그 정보를 나만의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입니다. 질문을 할 때도 서투른 호기심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본질을 향해 직진할 것을 권합니다. 제목 하나를 붙일 때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정교한 개념 정의를 시도하는 태도, 그것이 학문의 기초를 닦는 성실함의 정체입니다.
공부의 수준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언어의 예민함에 도달하게 됩니다. 김영민 교수는 문장의 명료함이 때로는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명료함은 모호함 뒤에 숨은 기득권이나 나태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특히 논술문이나 비판적인 글을 쓸 때, 저자는 모순 없는 문장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지독하게 얽히고설킨 모순 덩어리입니다. 공부하는 자의 사명은 이 복잡함을 외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않으면서도, 그 복잡함을 정교한 논리로 설명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의 높은 경지입니다. 저자는 새롭게 추가된 장에서 참꼰대의 윤리를 논합니다.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진실을 말하는 태도, 세속적인 인기나 아부 대신 진리를 선택하는 결기야말로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문체라고 말이죠.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지만, 결국 타인과의 만남으로 수렴됩니다. 토론과 비판, 그리고 이해의 기술에 대해 다룹니다. 진짜 이해란 타인의 심연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토론의 현장에서도 위트는 빛을 발합니다. 멍청한 주장에 대해 멍청한 비판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비판의 덕성을 길러야 합니다. 비판은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아니라, 함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정교한 분석 도구여야 합니다. 세미나를 즐기는 법, 발제하는 법, 사회를 보는 기술 등 구체적인 실전 팁들은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뿐만 아니라, 협업과 소통이 일상인 직장인들에게도 유용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공부의 완성으로 휴식과 고독을 이야기합니다. 공부는 타인과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철저히 혼자 남겨지는 과정입니다.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쓸데없는 시간이 있어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그 당장은 쓸데없는 생각이 나중에는 창의적인 생각으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쓸모 있는 일에만 집착하느라 진정한 창의성이 자라날 토양을 황폐화하곤 합니다. 저자는 연구년이나 휴식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모색을 위한 필수적인 공백으로 봅니다. 잘 쉬는 법을 아는 사람이 공부도 지속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잊기 쉬운 진리를 일깨워줍니다.

공부한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변하거나, 흙수저가 금수저가 되는 인생 역전 만루 홈런은 없다고도 말합니다. 즉각적인 쓸모를 위해서라면 아마 다른 일을 했을 거라는 고백과 함께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할까요? 갑갑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고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공부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줍니다. 이미 존재하는 더 나은 것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고, 나아가 보다 나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할 거라고요.
『공부란 무엇인가』는 공부를 지겨운 노동에서 우아한 유희로, 생존의 도구에서 존엄의 증명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될 겁니다. 세상을 이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가장 지적인 투쟁을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