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정원
아야세 마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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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아야세 마루의 소설집 『감각의 정원』은 기묘합니다. 2010년 등단작 〈꽃에 눈이 멀다〉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을 거머쥐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육체적 변이와 환상적 이미지로 치환해 내는 독보적인 감각을 증명해 보인 아야세 마루 작가.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정서는 서늘한 관능과 낯선 익숙함입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소유욕은 상대를 사물화하거나 나 자신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곤 합니다.


아야세 마루는 이 델리케이트한 지점을 식물이 자라나고 돌이 생겨나는 신체적 기화 현상으로 포착해 냈습니다. 여섯 편의 단편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스스로를 내어주며, 그 선은 언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하는지 보여줍니다.





첫 번째 작품 「매끈하게 움푹한 곳」은 연인 관계 속에서 점차 자신의 위치가 흐려지는 순간을 다룹니다. 모에카는 연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편안하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어딘가에서 계속 밀려나는 기분을 느낍니다. 관계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미묘한 힘의 균형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사랑을 말하지만 동시에 안전한 구속을 원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확실하게 붙잡아 주길 바라면서도 그 관계가 나를 제한할까 두려워합니다. 작가는 이 긴장감을 소파라는 사물로 표현합니다. 몸을 맡기면 편안하지만 동시에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 작가는 연애 관계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과 신체의 문제로 보여줍니다.


영국 문예지 《그란타》가 주목한 「떨리다」편에서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몸 안에 돌이 생긴다는 설정이 흥미롭습니다. 사랑의 결말은 그 돌을 꺼내 서로 교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돌을 꺼낸다는 것은 내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상대를 위해 나를 찢어발겨야만 완성되는 사랑. 아야세 마루는 로맨틱한 환상을 걷어내고, 관계의 본질에 내재된 근원적인 폭력성과 고독을 돌의 진동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우리가 타인과 공명하려 애쓰는 모든 시도가 실은 각자의 외로운 진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안겨줍니다.


「매그놀리아 남편」도 인상 깊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거대한 꽃나무로 변했습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놀랍도록 덤덤하게, 오히려 향긋하게 그려냅니다. 남편이 꽃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아내가 그것을 보고 괜찮다고 느끼는 장면에서 오싹한 기괴함을 받기도 합니다.





등단작 「꽃에 눈이 멀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신체와 식물이 뒤섞이는 관능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주인공의 몸에서는 끊임없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핍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 나를 잃어버리는 과정. 작가는 이를 식물화라는 은유로 풀어내며, 관계의 황홀함 뒤에 숨겨진 자아 상실의 공포를 탐미적으로 그려냈습니다.


텍스트가 아닌 감각으로 읽히는 소설을 만나는 독특한 시간입니다. 이소담 번역가의 후기도 소설의 감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로테스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묘한 소설 『감각의 정원』. 관계의 온도가 바뀌는 순간을 포착한 섬세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관계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는 문학을 좋아한다면 높은 몰입감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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