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 보호받지 못한 이들에 대하여
모먼트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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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법이 외면한 그늘에서 건져 올린 지독하게 아름다운 구원 서사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모먼트(김수림) 작가의 신작입니다.


범죄나 가해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계심과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는 명제는 명확해 보이니까요. 그러데 모먼트 작가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보는 그 죄의 뒷면에는 어떤 삶의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작가는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냅니다. 지안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의 문을 열어보입니다.


지안의 책상 위, 작은 나무 상자 속에는 목걸이가 들어있습니다. 빛바랜 끈에는 은주의 체온이 엉켜 있고, 지안이 그 목걸이를 손에 쥐는 순간 잊히지 않는 친구의 온기와 목소리, 그리고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지안에게 이 목걸이는 '그날'에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와 같습니다. 열네 살의 봄, 평온을 깨뜨린 은주의 전화 한 통. "지안아, 엄마가 피를 흘려... 나 너무 무서워." 뒤이어 들려온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말이 아이들의 입 위에 얼마나 가볍게 오르내리는지, 죄는 한 사람이 지었지만 그 벌은 온 가족이 나누어 받게 된다는 비정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작가는 이 멈춰버린 시계를 다시 돌리려 합니다. 왜 이들의 시계가 고장 날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 결함을 파헤치는 시선이 날카롭습니다.


지안의 기억 속 은주는 언제나 중심에서 비껴나 홀로 서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전염됩니다. 누군가가 은주에게 돌을 던지면, 다른 이들은 그 돌이 얼마나 뾰족한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은주가 겪어야 했던 연좌제는 구시대적 유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타인에게 던지는 우리의 무심한 시선이 때로는 가장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흑백논리로 이분합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지안이 상담을 하며 마주한 혁의 이야기는 그 경계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사법 기능은 법정 밖에서 더욱 잔혹하게 작동했습니다. 자극적인 프레임은 언론과 유튜브 플랫폼을 타고 찬반 토론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혁은 아내를 지켰다는 생각으로 당당해지려 애썼지만, 결국 회사는 퇴사를 권했고, 범죄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지키려 했던 생명의 무게보다 죽였다는 결과만을 기억했습니다. 한 인간의 일상을 파괴하는 거대한 폭력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게 만듭니다.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받고, 가해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이 지독한 부조리. 우리 사회가 법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실제 피해자의 입을 어떻게 틀어막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낙인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줍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사랑이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기도 합니다. 전교 2등이라는 성적표가 놓여 있었지만, 민찬에게 그 종이는 성취가 아닌 족쇄였습니다. 더는 못 하겠다는 절규와 함께 사건이 터집니다.


소년은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모성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성적 지상주의와 소유욕에 오염될 때, 한 아이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고 결국 범죄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지를 뼈아프게 짚어줍니다.





작가는 죄책이라는 감정이 개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응징 위주의 사법 정의를 넘어선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지안은 사회복지가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제도 언어로 번역하는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학교의 상담 기록, 경찰의 녹음 자료, 감사원의 조사서... 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문서들은 지안의 손을 거쳐 한 인간의 삶과 감정을 대변하는 복지 기록으로 재탄생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잠재적 경계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서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이죠.


젊은 작가들이 흔히 택하는 자기 고백의 내면 응시 대신,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향해 시선을 돌린 모먼트 작가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공감의 확장을 보여준 소설입니다. 그들의 삶이 왜 굴절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한 편의 심리 스릴러보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가슴 먹먹한 깨달음을 안겨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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