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시절을 지나는 중입니다 -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이애경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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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서른의 문턱에서 길을 잃었던 수많은 영혼을 구제했던 베스트셀러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을 기억하시나요? 복잡미묘한 심리 지도를 그려냈던 이애경 작가가 10년이라는 시간을 덧입혀 개정증보판 『빛나는 시절을 지나는 중입니다』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애경 작가는 조용필, 윤하 등 시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의 감성을 길어 올린 작사가이자 인스타툰 작가입니다. 10년 전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이제는 조금 더 단단해진 근육으로 답을 내놓습니다.


'빛나는 시절'이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나는 중'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제목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서른 이후의 삶을 통과하며 감정의 체력을 단련해 가는 기록이자 나이 듦을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로 다가옵니다.





이애경 작가가 포착한 사랑의 시작은 지극히 불공평하고 압도적입니다. "모든 빛이 너만 비추고 나는 네게 눈이 멀었다."라며 타자라는 블랙홀에 나의 모든 감각이 매몰되어 버린, 지독하게 아름다운 무기력증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겪는 시행착오들은 결국 그 눈부심을 견뎌내며 시력을 회복해 가는 과정인 셈입니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폐허일까요 아니면 거름일까요? 작가는 이별 이후의 감정을 "어떤 그리움은 빛에 젖은 여름비. 바라볼수록 눈이 시려와 고개 숙이면 목덜미에 내려앉는 다정한 얼음처럼 와락, 마음을 덮치는 빛의 폭풍"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별은 그 사람의 이름이 혀끝에 머물다 결국 삼켜지는 과정입니다. 작가는 이별의 고통을 억지로 털어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이 내 몸 안으로 온전히 흡수되어 '나'라는 인간의 무늬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관찰하게 만듭니다.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은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입니다. 20대의 눈물이 정제되지 않은 원석이었다면, 30대 이후의 눈물은 내 삶의 불필요한 것들을 씻어내는 세척액에 가깝습니다.


작가는 골드 미스라는 수식어 뒤에 숨은 고독, 질투와 부러움 사이의 미세한 균열, 결혼이라는 시소게임의 피로감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타이밍입니다. 눈물을 그친다는 것은 슬픔이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는 그 슬픔을 안고도 걸어갈 수 있다는 항체가 생겼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인생의 난제들 앞에서 자신을 고문하곤 합니다. 이애경 작가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끊임없는 질문들이 초침처럼 딸깍거리며 쌓여 가고, 돌무더기에 묶어 놓은 부표처럼 제자리를 맴돈다. (중략) 모르는 것은 10년 후에 묻기로."라고 답을 내립니다. 얼마나 근사한 여유인가요. 모든 질문에 즉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어른의 기술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채워짐과 수용의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든다’는 건, 사람이 들고 나듯이 무언가가 채워진다는 것. 단풍에 물이 들고 빠지듯 다른 색깔이 입혀진다는 것. 햇볕이 잘 들듯 많은 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었고, 밖으로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지금이 참 좋은 나이일 수도 있다"라는 깨달음은 정체된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반전의 시작점이 됩니다.


작가는 인생을 아포가토에 비유합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에스프레소가 만나는 그 순간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맛.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본질이라는 겁니다.





과거의 소중했던 물건들을 미국에 두고 온 에피소드를 통해 소유와 기억에 대한 생각을 전합니다. "내 손에 쥐고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들도 멀리 밀어 놓고 살아 보니, 없는 대로 살아지게 되었다. 1년의 삶, 상자 두 개로 정리할 수 있다면, 1년과 1년의 삶을 모아도 상자 두 개로 정리할 수 있을 테고, 결국 수십 년의 삶도 상자 두 개쯤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합니다. 그토록 집착했던 성취, 인맥, 상처들조차 결국 상자 두 개의 무게로 수렴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해방감을 맛보게 됩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두 비 모두 결국 삶을 적신 뒤 지나갑니다. 이애경 작가가 말하는 빛나는 시절은 봄비 같은 사랑의 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겨울비 같은 이별의 시간까지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도달하는 상태입니다. 『빛나는 시절을 지나는 중입니다』는 한 편의 인생 OST처럼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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