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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괴테의 문장들 - 200년이 지나도 심장을 뛰게 하는
민유하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0년 전 괴테의 문장들이 담긴 『초역, 괴테의 문장들』. 괴테가 남긴 방대한 저작 (소설, 시, 격언집 등) 중에서 120개의 문장을 엄선하여 엮었습니다. 초역이라는 방식은 죽은 텍스트를 살아있는 질문으로 되살리는 해석의 행위임을 읽는 내내 실감하게 됩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대문호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는 경이로운 다재다능인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행정을 총괄한 재상이었고, 광학과 식물학을 탐구한 과학자였으며, 광산 개발과 예산을 주무르던 실무가였습니다. 동시에 죽는 순간까지 뜨거운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교훈이 아니라, 살아보며 검증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경험의 압축 파일에 가깝습니다.
괴테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상당 부분이 나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좋아요 숫자에 자존감이 널을 뛰고, 남들의 화려한 단면과 나의 초라한 내면을 비교하는 우리에게 자기 극복이라는 고전적인 해결책을 보여줍니다.
"모든 존재를 옭아매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건넵니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Gewalt(폭력, 압력)라는 단어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규정하고 억눌러 길들이려 합니다. 이에 대항해 진정한 자유를 얻는 방법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태함과 오늘의 불안을 넘어서는 sich überwindet(자기 극복)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마음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오직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뿐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소한 규율, 화가 치미는 순간 입을 다무는 절제력. 이런 겹겹의 자기 극복이 쌓여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자존감이라는 성벽을 구축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자기 내면의 질서를 잡는 데 집중하라는 조언이 와닿습니다.
성공을 갈망하지만 시작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적 게으름쟁이들에게 괴테는 나이키의 슬로건보다 200년이나 앞서 Just Do It의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행해야 한다."라고 하면서요.
유튜브와 책을 통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지만, 정작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지식을 쌓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성취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괴테는 아는 것의 함정을 지적합니다. 적용되지 않은 지식은 그저 뇌 속의 데이터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괴테가 말하는 성취의 리듬은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입니다. 속도전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궤도를 묵묵히 도는 자전의 리듬입니다. 조급함에 쫓겨 무리하다가 번아웃에 빠지는 대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멈추지 않는 것. 괴테는 지속 가능성이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임을 이야기 합니다. 계획표를 짜는 데 온 에너지를 쓰지 말고, 당장 눈앞의 작은 일 하나를 완수하는 것이 삶을 바꾸는 유일한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그는 증명했습니다.
관계에 지쳐 인간 혐오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괴테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분석했습니다. "시기심은 수동적인 불쾌함이고, 증오는 능동적인 불쾌함이다."라고 말하며 내 마음의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태워 유지해야 하는 능동적 감정인 증오에 대해 경고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내 안에 스스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 불은 상대를 태우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숯검정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괴테는 증오만큼 가성비 나쁜 감정 노동은 없다고 합니다. 나를 갉아먹는 그 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미움이라는 장작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궤도를 존중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무리하게 모두를 사랑하려 애쓰기보다,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타인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평화를 찾는 지혜입니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명언집의 역할을 넘어섭니다. 괴테가 왜 이런 말을 했는가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묻는 해설서이자, 현재형 삶의 문제를 겨냥한 실천 안내서입니다. 편역자 민유하는 괴테의 원문을 독일어 그대로 제시하고, 그 문장을 다시 우리 삶의 고민과 연결합니다. Editor’s Note를 통해 그 의미를 현재 시제로 이해하게 됩니다.
괴테는 노년을 퇴보나 쇠퇴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과정으로 재정의합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맡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변하기에, 우리는 의지와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합니다.
노년을 내려놓음이나 은퇴의 시간으로만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괴테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시작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체적 기력은 감퇴할지 모르나, 세월이 준 통찰과 품격이라는 새로운 자본을 활용해 어른이라는 배역을 멋지게 소화해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름답게 늙는 것은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빚어내야 할 예술 작품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다듬어가는 태도.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괴테가 우리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입니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고어의 딱딱함을 걷어내고 오늘날의 호흡으로 괴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중심을 잡아줄 단단한 목소리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답을 찾으라는 세상의 압박에 괴테는 속도를 늦추되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