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정지음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평점 :
예약주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거짓말한 저에게 샤워를 허락하셔서..." 취중 반성문 주인공, 알고 보니 베스트셀러 작가? 정지음이 제안하는 글쓰기 혐오 극복 처방전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작가라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 고뇌하며 문장을 빚어내는 고상한 존재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여기, 술에 취해 부모님께 거짓말을 한 저에게 샤워를 허락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읍소 섞인 반성문을 쓰던 한 인물이 있습니다.


정지음 작가입니다.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이자 《젊은 ADHD의 슬픔》으로 수많은 느린 학습자와 부적응자들에게 위로를 건넸던 그가 이번에는 가장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고통인 글쓰기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밀리의서재에서 역대급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던 연재를 묶은 책입니다.


정지음 작가의 이력은 형형색색의 실패담에 가깝습니다. ADHD라는 혼란을 글로 정리하며 첫 책을 냈고, 직장 생활의 분노를 《언러키 스타트업》으로 승화시켰으며, 관계의 균열을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에 담아냈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고결한 예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비명이자 자신을 혐오하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방어기제였습니다. 신작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는 그 비명을 어떻게 문장으로 치환했는지에 대한 유쾌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왜 쓰려고 할까요? 작가는 무용한 쓰기의 유용함을 역설합니다. 글쓰기는 효율성을 따지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는 탈락할지 모르나, 인간의 정신적 파산을 막아주는 유일한 보루라는 것입니다.


"나만 읽는 글은 어떤 순간에도 내 편이었다. 나조차 나를 혐오할 때도, 온 세상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을 때도, 흰 종이만큼은 나를 외면하지 않았다."라며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얻은 세련된 분노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감정을 쏟아내는 배설이 아니라, 백지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며 감정의 온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요즘 세대들이 느끼는 자존감의 결여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합니다. SNS 속 화려한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을 지우는 대신,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자신의 사소한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특별함의 시작인 겁니다.


글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첫 문장에서 막히는 이들을 위해 작가는 독특한 방법을 꺼내듭니다. 자꾸 쓰는 단어만 쓴다는 자책 대신,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단어를 건져 올리는 단어 수집가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단순히 슬프다고 쓰는 대신, 그 슬픔이 어떤 색깔인지, 어떤 냄새가 나는지 구체적인 비유를 만드는 6가지 방법을 소개하며 글쓰기의 문턱을 낮춥니다. 각 잡고 작문을 하기보다는, 썰 풀듯이 이야기를 진행해보라고도 조언합니다.


작가는 '보내지 않을 메시지 쓰기'나 '첫 문장 노트'를 통해 글쓰기를 일상의 놀이로 전환합니다. 글쓰기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의식이 아니라, 오늘 내가 본 영화나 주변 사람에 대한 관찰을 기록하는 아주 사소한 습관들의 총합임을 일깨워줍니다.


글을 쓰다 보면 반드시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습니다. 내 글은 왜 이렇게 쓰레기 같을까라는 자책입니다. 정지음 작가는 이 쓴 맛을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자신의 수치심마저 콘텐츠로 만드는 '수치심의 콘텐츠화'를 제안합니다. 어린 시절 동생을 패서 노예로 삼겠다던 철없던 일기장의 내용을 공개하며, 흑역사야말로 가장 강력한 글쓰기 재료임을 보여줍니다.


나는 평생 나였기 때문에, 질리도록 함께한 내가 그대로 투영되는 글이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위로합니다. 자신의 글이 재미없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채우기보다 덜어내기의 미학, 그리고 남들이 쓰는 언어에 전염되지 않기를 강조합니다. 유머가 부족해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결함을 드러내는 용기가 곧 최고의 유머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감 전날의 기묘한 심리나 글이 막혔을 때 과감히 딴짓을 권하는 대목에서는 작가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느슨한 인간임을 확인하며 안도하게 됩니다.





작가는 글쓰기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계속'한다는 것은 단순히 매일 쓰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 잠시 도서관을 멀리하고 발로 쓰는 글을 찾아 떠나는 결단, 즉 돌아오기 위해 떠나기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오늘 단 한 문장밖에 쓰지 못했다 해도, 그 한 문장을 쓰기 위해 견뎌낸 시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시간은 우리를 천천히, 고통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성장시키고 있다고 말이죠.


정지음 작가는 글쓰기를 과거의 나와 화해하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정의합니다. 글쓰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갑니다. 그가 말하는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상 앞에 앉는 선택의 영역입니다.


ADHD라는 핸디캡을 서사의 원동력으로 바꾼 작가의 이력은, 글쓰기가 자기 수용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뱉어낸 사소한 불평 하나도 백지는 허투루 넘기지 않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도 정지음 작가처럼 세련되게 화내기 위해, 혹은 나와 화해하기 위해 써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흰 페이지를 위한 가장 다정한 응원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일관되게 자신의 취약성을 이야기 자산으로 바꾸어 왔던 정지음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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