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
알콩달콩 뚱딴지네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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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양보다 더 평양 같은 K-직장? 북한 엘리트 스파이가 목격한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기괴한 민낯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


설정부터 재밌습니다. 북한의 최정예 스파이가 남한의 공공기관에 위장 취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긴박한 총격전이나 고도의 심리전을 예상하셨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 소설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가 조준하는 타깃은 바로 우리가 매일 출근하는 직장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부조리극이기 때문입니다.


저자 알콩달콩 뚱딴지네는 실제로 공공기관에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가 해고당한 실전 경험이 있습니다. 무턱대고 펜을 든 이유는 단 하나였을 겁니다. 본인이 겪은 그 비현실적인 현실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겁니다. 북한 엘리트 해커 '서파이'의 눈을 빌려, 우리 사회의 꼰대 문화를 정면으로 마주해 봅니다.


소설의 서막을 여는 려명거리는 주인공 서파이가 남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을 그립니다. 그는 첨단 기술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자유의 땅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자는 환상이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기괴한 기시감을 묘사합니다.





서파이가 발령받은 공공기관은 겉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내부적으로는 낡은 관습과 부패가 퇴적물처럼 쌓여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신입사원들에게 강요하는 장기 자랑, 소위 재롱잔치. 단체 구호, 집단 동작, 강요되는 웃음과 박수. 이 장면은 북한의 집단 공연 아리랑과 남한의 기업 연수를 겹쳐 놓는 방식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블랙코미디는 웃기기 위해 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난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개성을 말살하고 조직의 부속품으로 길들이는 이 과정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간판 뒤에 숨겨진 전체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상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원되는 각종 의전은 북한의 수령 우상화 작업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북한말로 된 목차도 재밌습니다. 게으름을 뜻하는 '농태기' 편에서는 일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중견 간부들을 꼬집습니다. 업무의 본질보다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매몰된 조직의 모습은 요즘 세대들이 가장 혐오하는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직업동맹' 편에서는 실제 노동조합을 설립했던 저자의 경험이 가장 진하게 녹아 있습니다. 소설 속 노조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집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 기관으로 묘사됩니다. 공정을 외치는 사회에서 가장 불공정한 일이 벌어지는 현장을 목격한 스파이의 시선은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개인의 약점을 들추어내어 공격하는 북한 말 '뼈다구 파내기' 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인 수법들이 등장합니다.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는 북한 스파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K-직장 문화의 민낯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사회 심리극입니다.


우리는 조직 안에서 이방인입니다. 조직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어 당황하고, 부조리한 관행에 분노하지만, 결국 순응하거나 떠나야 하는 존재들. 오늘 하루도 까리하게 버티며 된방 맞지 않기 위해 눈치를 보았던 모든 직장인들을 응원합니다. 조직이라는 이름의 풍경을 솔직하게 그린 블랙코미디 보고서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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