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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희망 - 언젠가 다다를 삶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본 적이 있나요
<너의 작업실> 작업인 18인 지음 / 북심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독립서점 <너의 작업실> 18인의 힙하고 다정한 죽음의 예행연습 『장례희망』. 이 책은 경기도 일산 밤가시마을의 독립서점 <너의 작업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의 저자 김완 작가가 진행한 '죽음 워크숍'에서 참가자들은 각자의 부고문과 장례식 초대장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책방지기 '탱'을 비롯해 영어 강사, 요가인, 예술가, 엄마 등 각자의 우주를 품은 18명의 이웃들. 2년간 글쓰기 모임을 통해 완성한, 죽음에 관한 가장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기록이 탄생했습니다.
보통 죽음을 다룬 책들은 비장하거나 숙연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장례희망』은 갓생 뒤에 숨겨진 불안을 어루만지면서도, 어차피 한 번은 갈 여행인데 짐은 좀 가볍게 싸볼까라고 툭 던지는 유머와 다정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우리가 언젠가 다다를 그 마지막 장면으로 산책을 떠나볼까요.

1부 내 장례식에 놀러 올래요? 파트에서는 저마다 상상하는 각양각색의 장례식 풍경이 펼쳐집니다. 차가운 병원 장례식장의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사과나무 아래를, 누군가는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을 선택합니다. 죽음을 상실이 아닌, 남겨진 이들에게 건네는 아름다움의 전이로 정의합니다. 내가 다 이루지 못한 삶의 광휘를 당신이 대신 누려달라는 청탁, 이보다 세련된 작별 인사가 있을까요?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살았던 이의 고백은 더욱 묵직합니다. 우리는 종이에 손을 베이기 전까지는 종이가 칼보다 날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평온한 일상이라는 종이 장을 넘길 때마다 그 이면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깨어 있는 삶임을 보여주는 이야기도 만나게 됩니다.
나의 장례식을 상상하는 글에 묻어있는 공통된 정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라는지 구체적이고도 유쾌한 희망 사항을 내놓습니다. 장례식은 고인을 박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고인의 조각들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기억을 확인하며 '키득거리는' 축제가 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2부에서는 저자들이 직접 쓴 '나의 부고문'이 이어집니다. <너의 작업실> 문우들이 쓴 부고문에는 성공 대신 성실했던 취향들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을 웃고 나누며 돌보는 데 집중했던 사람, 혹은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의 홀가분함을 즐겼던 이들의 부고문은 당신이 떠난 뒤, 당신의 직함 말고 무엇이 남길 바라는지를 묻습니다.
누군가는 매일의 일상을 장례식처럼 소중히 대접하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매일이 장례식이라는 생각은 오늘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됩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연회라면, 우리는 굳이 미워하거나 인색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별의 경험을 통해 죽음의 무게를 배운 이의 문장도 가슴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기억을 더듬으며 죽음을 기억의 파편으로 정의합니다.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삶 속에 끈질기게 동행하는 슬픔의 군단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귀함을 일깨우기 위해 찾아옵니다.
슬픔을 할부로 나눈다는 개념도 재밌습니다. 한꺼번에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통증을 생의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나누어 갚아나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애도의 본질임을 일깨워 줍니다.
마지막으로 《울음 영역》이라는 소설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죽음은 고통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도달한 완전한 자유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구속이 될 때, 죽음은 비로소 자유의 다른 이름이 됩니다. 저자들은 죽음을 무작정 찬미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의 일부로서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 끝에서 누릴 자유를 담담하게 예견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자들은 약속합니다. 죽음을 생각했기에 이제는 마음껏 사랑하겠다고요.
『장례희망』은 내 장례식에선 내가 좋아하는 인디 밴드의 노래를 틀어달라거나 내 부고문에는 '고양이를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적어달라는 구체적이고 사적인 욕망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나의 장례식은 어떤 풍경이면 좋을지, 나의 부고문은 어떤 문장이 담기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언젠가 다다를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고백을 생각해봅니다. 부고문 작성을 통해,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의 장례식에서 틀고 싶은 노래 리스트 3곡을 먼저 골라보는 건 어떨까요? 그 노래들이 바로 나의 현재를 정의하는 색깔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유한함이라는 축복을 얻습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이라는 한 페이지가 그토록 소중해집니다. <너의 작업실>에서 피어난 온기 어린 대화의 산물 『장례희망』. 그 온기는 읽는 내내 제게도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슬픔 대신, 다시 살아갈 용기와 묘한 안도감을 선물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