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 생각지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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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기만적인 단어, 쾌적함의 민낯을 파헤친 책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우리는 인류사에서 가장 청결하고, 안전하며, 매끄러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고, 적응 장애와 번아웃은 현대인의 기본 옵션이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이 기묘한 현상의 근원을 추적합니다. 우리가 선망하는 이 쾌적한 사회가 사실은 개인을 정상성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고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거대한 여과 장치라고 일갈합니다. 2021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받은 이 책은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쾌적함의 비용이 무엇인지 짚어줍니다.


옆 사람의 미세한 기침 소리에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으셨나요? 혹은 노키즈존 안내문을 보며 조용하게 쉴 권리를 보장받았다는 안도감을 느끼셨나요?


현대 도시는 거대한 청정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소음, 악취, 무질서는 제거되어야 할 '불량'입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우리가 누리는 이 쾌적함이 사실은 타인을 향한 노골적인 배제와 통제를 연료로 삼고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입니다. 표면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내세우지만, 본질적으로는 불편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함을 합리적 권리로 둔갑시킨 결과입니다. 과거엔 공동체의 일원으로 당연히 수용되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노인의 느릿한 거동이, 이제는 나의 쾌적한 시간을 방해하는 리스크로 취급됩니다.


우리가 만든 아름다운 나라가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고통의 공간임을 꼬집습니다. SNS 속의 화려한 소통 이면에 자리 잡은 고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인간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전시하지만, 그 규격에서 벗어나는 순간 열등감과 죄책감의 늪에 빠집니다.


정신과 진단명이 폭증하고 ADHD가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에 대해 저자는 사회심리학적 관점으로 바라봅니다. 과거라면 조금 산만한 아이 혹은 고집 센 사람으로 통용되던 개성들이 왜 지금은 '질병'이 되었을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능숙함의 허들이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고도화된 서비스 사회와 IT 환경은 개인에게 멀티태스킹 능력, 고도의 의사소통 기술, 감정 조절력을 요구합니다. 이 고성능 기준에 맞추지 못하는 이들을 격리하거나 교정하기 위해 발달장애라는 진단명이 일종의 사회적 분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정신의료 시스템이 사회의 부적응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적 질서에 적합한 인재로 개조하는 품질 관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제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개인의 성실함과 자기 관리 능력을 증명하는 훈장이 되었습니다. 저속노화 식단에 집착하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올리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묻습니다. 우리가 건강에 집착할수록 왜 질병과 노화, 죽음은 우리 눈앞에서 투명하게 지워지는지를요.


병원과 요양시설은 노쇠한 육체를 도시에서 격리합니다. 활력 넘치는 사람들만 거리에 남겨진 표백된 도시에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생의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잃습니다.


건강의 의무화는 건강하지 못한 이들을 게으른 패배자로 낙인찍습니다. 저자는 건강이 목적 자체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우리가 누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노화를 늦추기 위해 자본을 투입하는 끝없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질주라고 경고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겪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서도 구마시로 도루는 질서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아이는 본질적으로 무질서하고 통제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쾌적함을 숭상하는 사회는 아이에게도 성인 수준의 예의를 강요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사회의 민폐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리스크 매니저가 됩니다. 쾌적함에 중독된 사회에서 육아는 기쁨이 아니라 시스템과의 전쟁이 됩니다. 저자는 낮은 출생률이 합리적 개인들이 내린 필연적 결과라고 말합니다. 질서 정연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생명의 역동성을 포기한 셈입니다.


우리는 노숙자가 사라진 거리, 낙서 하나 없는 벽을 보며 안도합니다. 하지만 그 깨끗함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청소부들과, 그 공간에서 쫓겨난 불결한 타자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청결이 결코 중립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은 꽤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청결함이란 원래 상류 계급의 자기 과시로 시작해, 이후 중상류 계급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특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청결은 애초부터 불평등에 뿌리를 둔, 부유할수록 쉽게 적응하고 가난할수록 애써야 하는 질서였다고 합니다.


청결은 세련된 배제의 기술입니다. 귀여움과 정갈함이 정의가 된 사회에서, 관리되지 않은 육체와 빈곤은 그 자체로 불쾌한 것이 되어 처벌받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청결한 질서를 무작정 옹호하기 전에, 그 질서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 물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은 자본주의, 개인주의, 사회계약을 현대 사회의 삼각 지지대로 꼽습니다. 이 논리들은 우리에게 유례없는 자유를 주었지만, 동시에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과 끊임없이 상승해야 한다는 압박을 선물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 사회는 이 서구적 논리를 브레이크 없이 수용하면서 독특한 비극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쾌적한 사회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었다니요. 구마시로 도루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위화감이 바로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단서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숨 막히는 시스템의 바깥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로 '자발적 불편'을 제안합니다. 완벽한 질서에 균열을 내고, 조금은 시끄러운 아이들, 조금은 느린 노인들, 조금은 서툰 이웃들과 부딪히며 사는 것입니다.


청결하고 규율화된 도시는 시민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튀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입합니다. 이때 쾌적함은 자유를 넓히기보다, 행동의 선택지를 줄이는 장치가 됩니다. 우리가 아이의 소란함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이미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로서 완벽한 질서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입니다.


기꺼이 불쾌해질 용기, 그리고 서로의 흠결을 견뎌주는 관용. 이 책은 정상이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에게 건네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무균실의 안락한 고립, 아니면 조금은 소란스럽지만 생기 넘치는 불편한 공존.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덕분에 당연하게 여겼던 쾌적함의 이면을 질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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