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 인류가 나아지지 못하는 7가지 이유와 그럼에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카리브해 몬트세랫섬의 화산 폭발. 섭씨 600도의 용암이 마을을 집어삼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피했던 주민들이 다시 죽음의 구덩이인 자신의 집으로 숨어듭니다.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되는데도, 돌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 몬트세랫 주민들의 행동은 쉽게 마주하기 힘든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는 우리가 좀 더 온건한 형태로 날마나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우리가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뇌가 설계한 치밀한 방어 체계 때문이라고 합니다.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생물물리학 박사 슈테판 클라인의 신작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우리의 뇌가 파놓은 7가지 함정을 지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고난도 심리 액션 가이드가 펼쳐집니다.
찬란했던 고대 문명들이 명백한 신호를 무시하고 기존 방식을 고수하다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면서도 바꾸지 못한 선택의 누적이 문명을 무너뜨렸습니다. 우리 뇌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지만, 기존의 관성을 따르는 것은 저비용 고효율의 생존 전략입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과거에 닻을 내린 존재로 태어난 셈입니다.

먼저 우리가 변화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는 이유를 7가지 인지적 착각을 해부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설치된 변화 방지 알람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판단합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 뇌는 사실을 수집하기보다 예측부호화(Predictive Coding)를 통해 세상을 짐작합니다. 외부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믿음에 맞게 해석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정보는 수정이 아니라 왜곡의 대상이 됩니다. 진실보다 덜 피곤한 해석이 선택됩니다. 이미 믿고 있는 관점에 맞는 정보만 수집하는 확증편향은 변화의 가장 강력한 적입니다. 뇌는 정답을 찾는 기계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최소화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느껴지는 불안함은 뇌가 "야, 에너지 아껴! 그냥 하던 대로 해!"라고 보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입니다.
새로움에 대한 열망, 낙관적인 태도, 정보의 축적이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통념도 착각입니다. 우리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 이미 변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비현실적인 낙관주의는 때로 다가올 위험을 가립니다. 또한 지식만으로는 행동이 바뀌지 않습니다.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흡연자가 있을까요?
습관은 뇌 속에 고유한 회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지의 상황에서는 대뇌피질이 결정을 내리고, 루틴한 일들은 뇌 속 깊은 곳에 있는 기저핵들이 처리한다고 말이죠. 이 핵들은 반복되는 운동 패턴을 유발하고, 우리가 습관을 고수하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뇌피질이 "변해야 해!"라고 외쳐도, 이미 고속도로처럼 뚫린 기저핵의 습관 회로를 이기기는 역부족입니다.

자유, 최선,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관련한 함정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행동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손실 회피 심리에 지배당합니다. 10만 원을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1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훨씬 크기에, 우리는 더 나은 미래(이익)보다 현재의 구차함(손실 방어)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적 이념과 집단 정체성에 지배받습니다. SNS 시대에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알고리즘이 우리의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만 보여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뇌의 노예로 살아야 할까요?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에서는 인류 역사상 성공했던 변화의 사례들(노예제 폐지, 공공장소 흡연 규제 등)을 통해 탈출구를 보여줍니다. 핵심은 의지력이라는 닳고 닳은 단어가 아니라 시스템과 문화입니다. 메타인지 가동하기, 넛징(Nudging)을 활용한 습관 대체, 작은 공동체에서의 성공 사례, 희망의 서사로 이어지는 전략이 펼쳐집니다. 변화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로 접근해 관성에서 해방되는, 저항에 저항하는 법을 소개합니다.
"어떻게 달라지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결국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거대 담론은 물론이고, 오늘 당장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개인적 목표까지 모든 변화의 시작은 우리 뇌의 고집스러운 본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는 인류학, 역사학, 신경과학을 엮어 만든 문명과 개인의 생존 보고서입니다. 우리가 왜 그토록 멍청한 선택을 반복하는지 이해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전략적인 변화를 설계할 용기가 생깁니다. 의지력을 탓하며 이불 킥하는 프로 결심러,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야 하는 리더는 물론이고 불확실성에 압도당한 우리들에게 희망의 근거를 안겨줍니다. 당신의 뇌를 이기는 법을 배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