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 가리지날 시리즈 9
조홍석 지음 / 트로이목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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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맛집과 핫플을 나열하는 가이드북이 아닙니다. 지도 위 점으로만 존재하던 장소들에 숨겨진 반전의 역사와 기묘한 인물들을 소환해 입체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인문 여행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 일본부터 태평양의 섬들까지 방구석 세계일주를 즐겨보세요.


조홍석 저자는 이력부터가 한 편의 시트콤 같습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해에 태어나 스타워즈를 보며 우주의 수호자를 꿈꿨으나, 인류 천문학의 발전을 위해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숭고한 자아성찰 끝에 흑화(?)하여 삼성맨이 된 인물입니다. 13년간 지인들에게 보낸 메일이 화제가 되어 가리지날(진짜 같은 가짜 상식을 바로잡는 오리지널 지식) 시리즈를 9권까지 펴낸 그는 스스로를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칭하며, 유발 하라리의 동생 무발 하라리라는 별명을 즐기는 유쾌한 지식 큐레이터입니다.


첫 페이지부터 우리의 상식을 무참히 깨부숩니다. 바로 일본 아오모리현의 예수님 무덤이야기입니다. 예수가 일본에서 106세까지 살았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아오모리현 신고무라라는 작은 마을에 실존하는 유적지에서 시작됩니다.





이곳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21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신도(神道)를 공부했고, 이스라엘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다 처형 위기에 처하자 동생 이수키리가 대신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예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세 딸을 낳고 천수를 누렸다는 겁니다. 이 황당무계한 서사가 지자체 차원의 축제(마츠리)로 승화되어 관광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신토불이적 종교 융합성과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는 기막힌 사례입니다.


이어지는 고베 이야기는 뭉클합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심에 세워진 18m 높이의 철인 28호 동상. 재난의 아픔을 예술과 서사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명합니다. 거대 로봇이 주는 압도적인 위용은 절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아시아의 근현대사와 전설을 가로지릅니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의 라마의 다리 이야기나 베트남판 낙랑공주인 미쩌우 공주의 비극은 지리적 거리감을 뛰어넘어 우리 역사와의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신화가 어떻게 연결되고 변형되며 전승되는지를 추적하며, 문화의 전파와 변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유럽 편에서도 가리치날의 촉을 세웁니다. 우리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이 당연히 경도 0도라고 믿지만, 실제 경도 0도는 현재 표시된 선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짚어줍니다.


아프리카 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케냐산 등반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이탈리아인 펠리체 베누치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극적입니다. 수용소 철조망 밖으로 보이는 위풍당당한 케냐산의 모습에 그만 빠져버리고 만 펠리체. 수용소를 탈출해 산 정상에 오른 뒤, 탈옥 목적이 정복이나 도주가 아니라 순수한 등반이었음을 증명하듯 다시 수용소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들의 일화는 압권입니다.


아메리카 편에서는 알래스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25년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 노엄에 디프테리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혈청을 운반하기 위해 혹한을 뚫고 달렸던 개썰매팀.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지요. 인간과 동물이 맺은 신뢰의 연대는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세워진 발토의 동상은 불굴의 의지에 대한 헌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여정은 인류의 이동 경로 중 가장 늦게 도달했다는 태평양의 섬들입니다. 호주의 딩고 펜스, 괌과 사이판의 갈등을 지나 모아이 석상의 라파누이섬을 만나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펜스는 만리장성보다 긴 세계 최장 인공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을 야생 개 딩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펜스는 5614km에 달합니다.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울타리의 존재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욕망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라 불리는 라파누이섬(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은 우리에게 환경과 생존에 대한 경고를 던집니다. 석상을 세우기 위해 섬의 모든 나무를 베어버린 결과 문명이 몰락했다는 가설과, 현재 그 석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 간의 반환 소송, 그리고 일본의 짝퉁 모아이 마케팅까지 과거의 유물이 현재의 욕망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해부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반전을 던집니다. 모아이석상보다 더 놀라운 거대 유적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 바로 고인돌입니다. 전 세계 고인돌의 40% 이상이 한반도에 있고, 그 규모와 정교함은 모아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우리 발밑에 있어서 모르고 지나쳤던 세계적 유산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을 통해 여행은 그 장소에 깃든 이야기를 마음으로 읽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조홍석 저자는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하지만 그 수다의 깊이는 얕지 않습니다.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되, 아재 감성 섞인 유머 덕분에 틈날 때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찾는 우리 아들의 최애 시리즈입니다. 이번 신간도 지금 제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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