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정문정 지음, 피도크 그림, 천근아 감수 / 서교책방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떤 책은 표지를 넘기기도 전에 이미 치유를 시작하곤 합니다. 정문정 작가의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가 그렇습니다. 제목을 읊조려 보세요. 마치 헝클어진 마음을 단번에 정돈해 주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오늘 다 망했어"라는 절망을 내일의 근육으로 바꾸는 마법, 회복탄력성을 다룬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었던 정문정 작가가 이번에는 아이들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나를 지키는 법의 기초 공사가 사실은 어린 시절의 감정 갈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100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는 피도크 작가의 귀여운 그림과 국내 최고의 소아정신과 권위자 천근아 교수의 감수가 더해졌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시련을 겪습니다. 놀이터에서 넘어져 아끼는 옷이 더러워지고, 친구와 장난감 때문에 다투며, 한글 퀴즈에서 아는 문제를 틀리고 맙니다. 작은 실패에도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는 유리 멘탈의 아이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반가울 겁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사소해 보이는 아이의 절망을 "별것도 아닌데 왜 울어?"라며 폄하하지 않습니다.
천근아 교수는 부정성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서 조절 능력이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불쾌한 사건이 하루 전체의 색깔을 검게 물들이는 지각의 오류를 일으키기 쉽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는 시계 요정의 마법과 함께 시작됩니다. 아이가 "당연하잖아. 오늘 나쁜 일이 계속 있었으니까!"라며 울먹일 때, 시계 요정은 지나온 시간을 되감기 합니다. 작가는 아이가 겪은 불행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 뒤에 숨어 있던 다정함의 조각들을 조명합니다. 아이는 시계 요정의 안내를 따라 자신의 하루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데이터 센터에 저장된 고정된 파일이 아닙니다. 어떤 관점으로 다시 보느냐에 따라 그 서사가 완전히 달라지는 유동적인 에너지입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편집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천근아 교수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 핵심 이유는 바로 회복탄력성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난 없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줄기를 세우는 단단한 마음 근육입니다.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쉽게 부정성 편향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나쁜 일'은 하루라는 거대한 풍경 속에 찍힌 작은 점일 뿐, 풍경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감정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은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는 사고 방식에서 나옵니다. '나쁜 일'이라는 점들을 연결해 '나쁜 날'이라는 선을 만들던 아이들에게, 그 점들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찬란한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내라고 속삭이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내일 또 어떤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나의 하루를 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