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성형수술이라고 하면 미용 목적의 시술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얼굴 만들기 The Facemaker』는 그 뒤에 숨겨진 피와 고름 그리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탄생한 재건의 역사를 끄집어냅니다.
의학사 연구의 권위자 린지 피츠해리스는 전작 『수술의 탄생』에서 조지프 리스터를 통해 외과 수술의 근대화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지옥도로 우리를 초대해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 해럴드 길리스를 소개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화된 대량 살상이 이루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참호 속으로 쏟아지는 파편과 저격병의 총탄은 병사들의 다리나 팔만 앗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잔혹하게도, 그들의 정체성인 얼굴을 통째로 날려버렸습니다.
얼굴 특징이 훼손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은 연민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얼굴이 훼손된 사람은 거부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라고 배우지만, 얼굴이 사라진 인간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은 그 어떤 도덕적 가르침보다 강력했습니다. 부상병들은 살아남은 영웅이 아니라 쳐다봐서는 안 될 괴물이 되어 유령처럼 떠돌아야 했습니다.

32세의 젊은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 케임브리지대 출신 의사인 그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결심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주기로 말입니다.
해럴드 길리스는 기존의 초보적인 성형 수술 기법들을 개선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끝에 완전히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성형 수술은 멸시받던 분야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재건과 미용 수술은 드물었고, 시험 삼아 수술을 한다고 해도 감염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졌습니다.
길리스는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예술가적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피부판 이식의 초기 형태를 고안하며, 문자 그대로 새로운 인간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군 병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길리스는 병동에 거울을 금지했습니다. 새로 오는 환자들이 손상된 자신의 얼굴을 처음으로 접하고서 충격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한편, 다 끝날 때까지 오래 걸리는 재건 수술 동안 환자들이 얼굴을 보며 받을 충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길리스는 무너진 자존감을 재건하는 것이 더 시급함을 알았습니다.
환자의 표정을 연구하고, 이전 사진을 보며 그들의 본래 모습을 추적하는 탐정이자 예술가였던 의사들. 퀸스 병원 주변의 파란 벤치에 앉아있던 부상병들은 서로의 무너진 얼굴을 마주하며 역설적으로 가장 진한 동료애를 느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그들끼리는 마스크 없이도 서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 만들기』는 성형 수술의 초기 잔혹사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모든 수술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항생제도 없던 시절, 수십 차례의 수술을 견뎌야 했던 환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험대상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흉측한 괴물로 남느니, 차라리 수술대의 고통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얼굴 복원을 시작하면 그들의 사기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길리스는 현대 의학의 정수인 다학제적 협력을 100년 전에 이미 실행했습니다. 특히 치과 의사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얼굴 재건에서 치과 의사가 맡은 주된 역할은 환자가 비교적 쉽게 먹고 말할 수 있도록 복원하는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치과 의사는 재건 작업의 전반적인 성공에 꼭 필요했습니다.
길리스가 남긴 유산은 수술 기법 이상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수술 과정을 예술가들의 손을 빌려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이 초상화들은 환자들의 수술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공했고, 수술 그림들은 다른 이들이 병사 얼굴의 형태와 기능을 복원하는 복잡한 수술을 재연하도록 도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퀸스 병원의 미술가들은 재건 의료진의 핵심 인력이 되었습니다.
기존 기법들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법을 상상하며 검증하고 표준화하는 일은 길리스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치밀한 기록 덕분에 성형 수술은 비로소 주술이나 야만적인 실험이 아닌, 현대 의학의 한 분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차 대전의 포화가 낳은 성형 수술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탄생사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탐구 보고서 『얼굴 만들기』.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피어난 의학적 진보와 인간 정신의 승리를 한 편의 대서사로 만나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매몰된 현대 성형 담론에서 벗어나, 얼굴이 인간의 정체성과 사기에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력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기술적인 수술법을 넘어, 환자의 사회적 삶을 복구하기 위해 고뇌했던 의사의 철학을 통해 진정한 인술(仁術)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