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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읽는 명상록 : 『명상록』 필사집 - 치열한 삶의 전선에서 새기는 의지의 문장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작, 박찬국 편역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늘도 쏟아지는 알림 설정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파도 속에서 나라는 작은 조각배를 지키느라 고군분투하고 계시진 않나요? 로마 제국의 가장 높은 곳에서 전장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써 내려간 생존 기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매일 아침 자신을 다독이고 채찍질했던 수련의 흔적입니다. 서울대 철학과 박찬국 교수의 편역으로 재탄생한 『손으로 읽는 명상록 : 명상록 필사집』은 황제의 문장을 내 삶에 새겨 넣는 필사책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2천 년 전 전장의 천막 안에서 등불을 밝히고 일기를 쓰던 황제의 마음으로 펜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이 책은 불안을 바로 해결해주는 마법 지팡이는 아니지만, 굴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요새를 짓는 정직한 설계도가 되어줍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라며 세상을 원망합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 반란,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황제라는 직책은 감당하기 버거운 책임의 연속이었습니다. 박찬국 교수는 여기서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소환합니다.
니체와 아우렐리우스는 시대를 달리하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진 조건이 최선'임을 인정하라고 조언합니다.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에게 닥친 고난을 삶이라는 예술 작품의 필수 재료로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긍정입니다. 필사를 하며 문장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날 선 원망이 가라앉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깁니다. 운명에 끌려가는 노예가 아니라, 운명의 고삐를 쥐는 주인이 되는 첫걸음인 셈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을 갈구합니다. 이번 승진만 하면, 저 차만 사면 행복해질 거라 믿으면서요. 스토아 철학의 관점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행복의 거처를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찬국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빌려와 이 개념을 들여다봅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기능인 이성을 탁월하게 발휘할 때 찾아온다는 겁니다. 아우렐리우스에게 행복은 자족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짓는 일입니다.
소셜 미디어는 끊임없이 타인의 화려한 일상을 전시하며 우리의 자족을 방해합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공포가 만연한 시대에, 아우렐리우스는 진정한 휴양지는 바로 당신의 영혼 안에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필사는 이 내면의 요새를 한 땀 한 땀 쌓아 올리는 작업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남들의 부를 부러워하기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판단력을 가다듬는 즐거움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시끄럽습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이 뒤섞여 현재를 갉아먹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평정을 유지했을까요? 그는 아파테이아(Apatheia), 즉 부동심을 강조했습니다. 박찬국 교수는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와 연결합니다. 모든 것이 오직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동양의 지혜가 로마 황제의 사유와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불안은 대개 나의 이익이 침해받을까 두려워할 때 극대화됩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시야를 넓혀 공동체의 이익과 보편적 이성에 집중하라고 권합니다. 나라는 작은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평온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겪는 큰 고통 중 하나는 평판입니다. 좋아요 숫자에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타인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인정 비판'과 결을 같이 하는 아우렐리우스의 관점을 만나게 됩니다. 황제는 말합니다. 당신을 칭찬하는 사람도, 비난하는 사람도 곧 죽어 사라질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덧없는 입술에 내 가치를 맡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진정한 평가는 오직 자기 자신의 이성 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타인의 인정을 구걸하는 행위는 내 행복의 스위치를 남에게 넘겨주는 행위입니다. 필사를 통해 우리는 그 스위치를 회수해 옵니다. 나는 내 가치를 안다는 확신은 겸손하지만 강력한 방패가 되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담력을 줍니다.
『손으로 읽는 명상록』으로 박찬국 교수의 안내를 따라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원효, 쇼펜하우어라는 거장들의 사유와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을 교차하며 생각하고 쓰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철학자로 성장합니다. 늘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책을 읽을 시간, 사색할 시간, 나를 돌아볼 시간은 늘 부족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묻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시간이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마음의 우선순위가 뒤엉킨 것일까요?
바쁘다는 핑계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홀했거나, 정작 다스려야 할 내 안의 감정들은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명상록 필사는 내 삶의 불필요한 소음들을 걷어내고 지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가려내는 과정이 됩니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펜 끝에 마음을 실어 단단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손으로 읽는 명상록 : 명상록 필사집』. 빠르게 소비하는 문장이 아니라, 천천히 살아보게 하는 문장들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