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이탈리아 - 매혹적이고 낯선 이탈리아 명화의 초대 ㅣ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지안.이정우 지음 / 더블북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명화 속 심리를 꿰뚫어 보는 이지안 도슨트와 현대미술의 문법을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이정우 에디터가 초대하는 이탈리아 미술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편에서는 르네상스라는 찬란한 과거를 먹고 사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남부 나폴리까지 이어지는 그랜드 투어의 여정은 예술가들이 던진 치열한 삶의 질문에 응답하는 과정입니다.
밀라노 지역의 미술관에서는 권력이 예술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그리고 예술이 어떻게 다시 권력의 뒤통수를 치거나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을 조명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나폴레옹이 설계한 제2의 루브르, 브레라 미술관. 저자들은 여기서 나폴레옹의 초상화보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애도>에 주목합니다. 파격적인 단축법으로 그려진 그리스도의 발바닥은 관찰자를 압도합니다. 비천한 출신의 천재가 어떻게 독립적인 화가로 거듭났는지를 추적합니다.
밀라노 모던아트갤러리에서 만나는 주세페 몰테니의 <굴뚝 청소부>는 예술이 지닌 연대의 힘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가여운 아이를 묘사한 일상을 그리는 장르화를 넘어, 당대 유럽의 아동 노동법 제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짚어줍니다.

피에로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도 인상 깊었습니다. 예술가의 배설물조차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 지독한 풍자는 현대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더불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게으름에 대한 찬가를 곁들여, 예술가가 세상을 대하는 발칙한 방식이 어떻게 브랜딩이 되는지 에디터의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피아첸차의 리치오디 현대미술관도 무척 매혹적입니다. 대중에게 덜 알려진 이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서 우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잃어버렸던 걸작 <여인의 초상>을 만납니다. 도난당했다가 23년 만에 벽장 속에서 발견된 이 작품의 기구한 운명을 이야기하며, 마키아이올리 화파 같은 이탈리아 자생적 인상파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한 여성의 안목이 역사를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줍니다. 잭슨 폴록의 성공 뒤에 가려진 고독과 주체적인 죽음에 대한 마크 로스코의 해석을 빌려와 마음을 울리기도 합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보티첼리, 다빈치, 미켈란젤로의 작품들도 저자의 입담을 통해 생생한 인간의 드라마로 변모합니다. 르네상스의 집대성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은 압도적입니다.
바티칸 박물관과 보르게세 미술관을 다루는 로마 파트에서는 천재성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고집을 다룹니다.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피에타>를 왜 인간이 아닌 신의 시선에서 완성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율을 줍니다. 〈피에타〉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축 처진 그리스도의 몸과 생기를 잃은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반 고흐의 <피에타>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나폴리의 카포디몬테 국립미술관에서 이탈리아 대장정은 마무리됩니다. 이곳에서 르네상스의 우아함과 현대미술의 파격인 앤디 워홀의 <베수비오>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줄 서기에 지쳐 포기했던 유명 미술관의 닫힌 문 너머로 거장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게 되는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탈리아』. 미술이 박물관 유리창 안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삶의 브랜딩을 고민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언어임을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