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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 90세 정신과 전문의가 깨달은 늙지 않는 마음의 비밀
이근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이화여대 의과대학 교수로 50년을 살며 환자들의 마음을 돌보았고, 퇴임 후에도 네팔 의료봉사와 가족 아카데미 설립 등 멈추지 않는 생의 에너지를 보여준 이근후 교수.
그가 아흔 살의 고개에서 쓴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이제 막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오십들에게 보내는 생존 지침서이자 정신적 지도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고 지혜가 생길 거라 착각하지만, 이근후 교수는 성숙을 단순히 나이 듦의 결과로 보지 않고 인위적인 노력의 산물로 정의합니다.
노화가 자연의 순리라면, 성숙은 마음을 갈고닦는 치열한 수행입니다. 사물의 이치와 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정신적 능력을 강조합니다. 나이들수록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유연함과 맞닿아 있습니다.
경직된 태도보다 유연한 적응력이 곧 성숙의 척도라는 것, 오십이라는 나이가 정체된 고인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는 진행형이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이근후 교수는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몸이 늙으면 마음도 늙는 것은 우주의 이치라고 말합니다. 마음이 늙어가는 징후를 기력을 잃어가는 것 즉, 행동하는 힘을 상실하는 무기력으로 봅니다.
유독 오십 이후에 찾아오는 무기력은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젊은 시절의 무기력은 회복이 빠르고 원인이 비교적 선명하지만, 오십 이후의 그것은 인생의 한고비를 넘기며 지난날을 회고하고 참회하는 복합적인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튻히 심리적 원인에 의한 무기력증은 꼬리표 증상처럼 우울이나 불안 뒤에 숨어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본인 역시 불쑥불쑥 허무함이 솟아오를 때가 있다고 고백하며, 그럴 때마다 무엇이 나를 무기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찾아오는가를 곰곰이 되짚어보는 시간이 해결의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감정의 부산물은 튀는 물방울과 같으니, 그 현상 자체에 매몰되지 말고 원인이 된 '자극'을 찾아내는 것이 오십 대의 마음 방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짚어줍니다.
오십 대가 되면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이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깔립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은 현재의 에너지를 미래로 보내지 못하게 막는 바리케이드와 같습니다.
이근후 교수는 후회하지 않으려 애쓰는 대신, 후회의 질(Quality)을 바꾸라고 합니다. 실패했던 일이나 놓쳤던 기회에 매몰되는 대신, 그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방어기제를 형성했는지 분석하는 지적 회고로 전환하라는 겁니다. 그는 90세의 관점에서 볼 때, 50년 전의 뼈아픈 실책조차 결국 인생이라는 긴 강물에 떠내려가는 작은 잎사귀에 불과했음을 일깨워줍니다.
더불어 분노, 질투, 원망 같은 감정들이 우리 뇌의 전두엽을 마비시키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오십 대의 뇌는 젊은 시절보다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침투했을 때 이를 걷어내는 속도가 생존의 핵심입니다.
기분 전환이라는 뻔한 말 대신 감정의 객관화라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의 편집자가 되어 불필요한 감정 씬을 과감히 잘라내는 것, 그것이 정신 승리의 비결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도 의미 있습니다. 오십 이후의 부모들에게 자비로운 방관자가 될 것을 주문합니다. 특히 다 큰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역할을 이제 그만 졸업하라고 합니다.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자녀의 자생력을 해칠 뿐만 아니라, 부모 자신의 노후를 고갈시키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거리를 두는 것에서 완성된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오십 대야말로 관계의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기라고 진단합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유지해온 비즈니스적 관계나 체면 때문에 참석해온 사교 모임들을 과감히 정리해도 됩니다. 대신 그 에너지를 나 자신과의 연애에 투자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쏟았던 정성의 10%만이라도 나 자신의 취향과 내면의 대화에 쏟을 때, 비로소 고독은 외로움이 아닌 충만함으로 치환됩니다.
그와 함께 돈의 집착을 끊고 질병과 공생하며 시간을 장악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직하게 벌어 즐겁게 쓰는 것이 최고의 경제학이라고 말합니다. 돈은 왔다가 가는 유동적인 에너지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내가 가진 자산이 얼마인가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얼마만큼의 자원으로 충분함을 느끼는지 그 임계점을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명료한 선 긋기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지옥에서 탈출하여 각자의 평온한 경제적 낙원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노후 불안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인생은 원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받아들일 때, 역설적으로 모든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노후의 불안에 강해지는 유일한 방법으로 현재에 뿌리 내리기를 제안합니다. 90세의 그가 지금도 새로운 책을 쓰고 강연을 나가는 원동력은 미래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투명하게 즐기는 태도에 있습니다.
저자는 불안해하는 자신을 가만히 지켜보라고 조언합니다. 그 불안의 실체를 파헤쳐보면 결국 허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불안의 정체를 명료하게 규명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 현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긋는 것. 이것이 바로 90년의 세월을 견뎌온 거장이 우리에게 전하는 노후 설계의 핵심입니다.
이근후 교수의 조언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은 나로의 회귀입니다. 타인의 시선, 과거의 유령, 가족이라는 의무감에 짓눌려있던 오십 대의 자아를 구출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 삶을 어지럽히는 과잉된 관계와 감정을 걷어내라고 말입니다. 『오십부터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는 내일의 걱정을 도려내고 오늘을 온전히 소유하는 법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