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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명상록 - 평정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민유하 엮음 / 리프레시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류사에서 강력한 멘탈 트레이닝 북으로 꼽히는 『명상록』의 고향은 안락한 서재가 아니었습니다. 축축한 진흙탕 위 전장의 막사, 전염병이 창궐하여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로마의 거처, 그리고 믿었던 동료의 반란이라는 배신감이 휘몰아치는 심연의 한복판이었습니다.
민유하 편역자가 오늘의 언어로 벼려낸 『초역 명상록』은 2,000년이라는 시공간의 벽을 허물고, 어떻게 하면 외부의 소란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고 나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고민을 보여줍니다.
제국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최고의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비극의 화신과도 같았습니다. 그의 화려한 이력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통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로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병약했던 그는 가정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그를 가장 진실한 자(Verissus)라고 부르며 아꼈을 만큼 영민함이 남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40세에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게르만족과 스키타이족의 끊임없는 침략, 티베리스강의 범람으로 인한 기근, 제국을 휩쓴 치명적인 페스트(안토니누스 역병)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개인적인 비극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아내 파우스티나와의 사이에서 13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그중 8명이 요절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황제라는 자리는 세상 모든 것을 가졌음을 의미했지만, 정작 그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장 많이 잃어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전쟁터의 밤을 지새우며 기록한 사유의 정수가 바로 『명상록』입니다.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는 평정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하지 않는 배의 중심을 잡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그는 감정이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사실에 부여한 해석의 결과물임을 명확히 인지했습니다.
"분노는 겉으로는 강렬해 보이지만, 그 실체는 마음을 갉아먹는 독이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질 뿐, 실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과정이다. 화를 낼수록 마음은 불안정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무너진다. 분노는 외부를 향한 공격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자해에 가깝다." (p.26)
아우렐리우스는 화를 내기로 '선택'한 나의 판단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불안을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림자라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공포로 치환하는 인간의 본성을 경계합니다. 위기는 내면의 힘을 드러내는 기회일 뿐이라는 그의 독려가 인상 깊었습니다.
황제라는 자리는 얼마나 많은 칭송과 질투가 공존하는 곳입니까. 그는 평판이란 덧없는 연기에 불과하다고 경고합니다.
"남의 눈에 맞추지 말라. 그대의 영혼은 그들의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p.78)
우리가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비난이 나를 실질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비교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명료한 지름길임을 짚어줍니다. 남의 말보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는 그의 외침은 2,000년의 시간을 넘어 디지털 정글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자존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스토아 철학의 정수는 자연과의 조화와 운명에 대한 수용에 있습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운명을 거부해야 할 적이 아니라 동행해야 할 동반자로 규정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외부의 조건들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오직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의지와 나의 판단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원하지 않았던 전염병이나 전쟁 앞에서 의연한 태도는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강력한 멘탈리티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염세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정의하며, 타인을 돕는 것이 결국 나를 돕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타인의 잘못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타인의 무례나 실수를 볼 때, 그것이 곧 나의 모습일 수 있음을 성찰하라고 말합니다. 미움은 결국 나를 해치기에, 이해를 통해 용서로 나아가는 것이 공동선을 위한 길임을 역설합니다.
또한 그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삶의 명확한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생명의 완성입니다. 유한함을 인지할 때 비로소 오늘 하루의 소중함이 드러납니다. 그에게 죽음은 자유의 문이자 자연으로 돌아가는 평화로운 이행이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철학을 관념이 아닌 근육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다룹니다. 지혜는 고통 속에서 피어나며, 실천이 없는 생각은 공허할 뿐입니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아침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고, 작은 습관들이 모여 거대한 덕을 완성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지금의 행동이 내일을 만든다. 삶은 ‘지금’의 연속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루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늘 내일이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행동이 곧 내일을 만든다. 작은 일이라도 지금 실천할 때,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p.224)
그는 현재만이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임을 상기시킵니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반복이 나를 만들고, 그 사소한 실천들이 모여 결국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질서를 구축합니다.
민유하 편역자의 『초역 명상록』은 원문의 깊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고전 특유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명료한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세상은 늘 혼란스럽습니다. 2,000년 전의 로마나 지금의 대한민국이나 소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에게 나직이 속삭입니다. 평정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내면에서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 타인의 시선에 숨이 막힐 때 이 책을 펼쳐보세요. 삶의 고비마다 펼쳐서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영혼의 덤벨과 같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불공평하고, 타인은 무례하며, 운명은 가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평정은 오직 당신만이 선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