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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 상처 입은 동물들을 구조하며 써내려간 간절함의 기록
김정호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동물권과 공존에 대해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이자 국내 1호 거점동물원을 일궈낸 김정호 수의사의 에세이입니다.
김정호 수의사는 2022년 제1회 ‘아름다운 수의사상’을 수상한 현장의 투사입니다. 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의사가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동물을 가두어 구경거리로 만드는 동물원이라는 공간에서 일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대한민국 동물복지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는 25년간 야생동물들의 고통 곁을 지키며 써 내려간, 눈물겹도록 다정하고 서늘할 만큼 치열한 기록입니다.
김정호 수의사는 우리가 동물원을 소비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동물원은 어린이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지만, 그 이면에는 죽어야만 나올 수 있는 케이지가 존재합니다.
갈비사자 바람이는 구조되기 전, 햇빛도 들지 않는 실내에서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구조란 결국 특별한 영웅적 행동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태도의 다른 이름임을 그의 행동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구조한 사육곰 반이와 달이의 이야기는 상징적입니다. 사육곰 농장의 반이와 달이가 온 이듬해, 청주동물원은 곰사 개선 비용으로 국비가 포함된 2억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청주동물원이 곰들을 구조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곰들이 청주동물원을 구한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동물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구조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시스템을 혁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곰들이 청주동물원을 구했다는 고백은 동물을 도구화하는 시각에서 벗어난 저자만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야생동물은 포식자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아픔을 숨깁니다. 그래서 수의사의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비명을 듣는 일입니다.
청주동물원에 음악을 틀지 않는 이유가 놀라웠습니다. 인간에게는 감미로운 배경음악이 예민한 청각을 가진 동물들에게는 회피할 곳 없는 소음 공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에게 불친절한 동물원을 선언하며 관람로를 없애고 동물의 숨을 곳을 먼저 챙깁니다.
"몸의 고통을 빨리 발견하여 해결해주는 것이 수의사로서 동물복지를 실천하는 길이라 믿는다. 동물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가만히 말해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러면 좀 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수의사로서의 소명을 정의내리기도 합니다.
사자 바람이가 살던 열악한 실내 동물원 환경을 지적하며 "야생동물과의 공존은 개별적 존재를 인정하고 소유욕을 내려놓을 때 이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동물을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소유하려 하지만, 진정한 공존은 그들의 개별적 존재성을 인정하고 방해하지 않는 비어 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김정호 수의사는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독수리사 앞에서 아이들에게 받았던 순수한 질문들은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선생님! 그럼 왜 독수리는 날개를 펴지도 못하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어요?” “선생님! 그럼 왜 수달은 작은 욕조에 살아요? 똥 눌 바위는 왜 없어요?” 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동물원의 풍경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꿰뚫어 봅니다.

이 부끄러움을 동력 삼아 청주동물원을 변화시켰습니다. 늙고 병든 동물들이 뒤쪽 칸으로 숨겨지는 대신, 그들의 생로병사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존중받는 공간을 만듭니다. 쓸모가 없어지면 폐기되거나 격리되는 존재들. 김정호 수의사는 청주동물원을 통해 쓸모가 아닌 존재 자체로 대접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우리가 무심코 즐겼던 관람 문화 뒤편의 고통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불편한 자각을 촉구하는 『아프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그 불편함 끝에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흙을 밟게 된 사자 바람이의 평온한 숨소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비정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정하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갈비뼈가 드러난 사자에게서 우리 자신의 소외된 내면을 발견하고, 그 사자를 구조하는 손길에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