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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획하는 일 - 기획자는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읽는가
편은지 지음 / 투래빗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잘 짜인 포맷은 유통기한이 있지만, 잘 발견된 사람은 영원하다. 편은지 PD가 말하는 인류애적 기획론 『사람을 기획하는 일』. 기획의 중심을 시스템에서 서사로 옮겨온 PD의 고백을 만나보세요.
매일 수만 개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피드 속에서 살아갑니다. 어제 본 릴스가 오늘 기억나지 않고, 거액을 들인 대작 예능이 한 달 만에 종영하는 광경도 익숙합니다. 기술은 화려해지고 포맷은 치밀해지는데, 왜 우리의 마음을 붙드는 한 끗은 점점 귀해지는 걸까요?
KBS 예능의 구원투수로 불리는 편은지 PD는 『사람을 기획하는 일』에서 그 해답이 결국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굳이 정체기에 빠졌던 <살림하는 남자들(살림남)>의 메인 연출을 자처했던 편은지 PD.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체 예능 시청률 2위, 시청자가 직접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 상' 수상. 반전의 중심에는 출연자의 주름진 손마디에 주목했던 그만의 독특한 시선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메커니즘을 이 책에서 펼쳐 보입니다.
기획자는 관찰자이자 동시에 해석자입니다. 편은지 PD는 피사체를 카메라 렌즈에 담는 행위를 넘어, 그 사람의 내면에 쌓인 지층을 읽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살아내는' 사람은 '보여주는' 사람보다 훨씬 더 다양한 서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는 관찰은 표면적인 스펙이나 외형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중이 진정으로 열광하는 지점은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생존의 흔적이라는 것을 짚어냅니다. 편은지 PD는 일주일에도 2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사소한 장신구 하나, 무심코 내뱉는 단어 하나에서 기획의 단초를 찾습니다.
이런 태도는 기획을 따뜻한 미래 서사로 정의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취향이 거대한 팬덤의 서사로 치환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그가 보여주는 사람 기획의 정수입니다. 존재감 없는 이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기교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코끼리(억눌린 욕망이나 슬픔)를 마주할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감각 혹은 트렌드를 읽는 눈에 집착할 때, 저자는 의외의 단어를 꺼내 듭니다. 바로 태도입니다. 기획자의 태도가 곧 콘텐츠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특히 기획자의 그릇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뜨겁고 무거운 돌과 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주물 그릇을 만들어야 기획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성공한 기획은 비판과 찬사라는 두 가지 뜨거운 불을 동시에 견뎌내야 합니다. 장수 예능의 사례를 들며 대중의 비판조차 기획의 일부로 흡수하는 유연함이 얼마나 명확한 경쟁력이 되는지 짚어줍니다.
또한 자기 말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합니다. 기획자가 아무리 멋진 대본을 써주어도, 결국 대중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은 출연자의 진심 어린 한 줄이기 때문입니다.
소심한 사람들의 콘텐츠가 오래간다는 분석도 재밌습니다. 자기 과시적인 인물보다, 세심하게 세상을 살피고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이들의 진정성이 디지털 피로도가 높은 우리들에게 오히려 해독제가 된다는 겁니다. 진짜는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발견된다는 그의 믿음은 기획의 본질적 품격이 무엇인지 다시금 묻게 합니다.
기획이란 보기 좋게 포장하고 단점을 가리는 일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편은지 PD는 오히려 출연자의 결핍과 틈새를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대중은 완벽한 가공품보다, 나를 닮은 부족함에서 위로를 얻기 때문입니다. <살림하는 남자들>이 큰 성공을 거둔 배경에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와 서툰 일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 연출의 힘이 컸습니다.

시청률이나 매출 같은 휘발성 지표보다 한 사람의 미래를 남기는 기획을 지향하는 『사람을 기획하는 일』. 출연자로 하여금 무장해제를 하게 만들고, 그 틈새에서 진짜 브랜드가 탄생하는 여정 속에 자리 잡은 세심한 한 끗의 비밀을 보여줍니다. 기획자가 사람을 다룰 때 갖춰야 할 전략적 섬세함의 끝판왕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진심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따뜻하되,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은 치밀하고 일관되게. SNS 속 캐릭터와 현실의 사람 사이의 균형을 잡는 법, 반 걸음만 앞서가며 대중의 호흡을 맞추는 법 등 다양한 방법론이 펼쳐집니다.
책 속 기획자의 메모와 실전 기획노트가 유용합니다. 한 사람을 어떻게 예능적 맥락 안에서 브랜드로 재정의했는지, 시청률 정체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세웠는지 공개합니다. 전쟁터 같은 방송 현장에서 피와 땀으로 써 내려간 작전 지도와 같습니다.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가치는 결국 사람의 온기입니다. 기획이란 타인의 삶을 응원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해 세상과 연결하는 숭고한 작업임을 증명해 보입니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타인을 대하는 기획자의 눈과 심장을 어떻게 벼려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KBS 예능 PD가 밝히는 사람을 브랜드로 만드는 기획법. 이 책은 방송가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영업자, 팀원을 이끄는 리더 혹은 자기 자신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세상에 내보낼지 고민하는 이들까지, 사람이라는 우주를 여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침반이 되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