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태 켈러 지음, 제랄딘 로드리게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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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뉴베리상 작가 태 켈러가 해체한 동화의 민낯과 소녀의 실존주의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태 켈러(Tae Keller)의 첫 어린이 동화입니다.


태 켈러 작가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을 통해 미국 최고의 아동문학상 뉴베리 대상을 거머쥐며 문학적 깊이를 인정받은 작가입니다. 1998년 아메리카 북어워드 수상작 『종군위안부』를 쓴 노라 옥자 켈러의 딸이기도 합니다. 대를 이어 흐르는 이야기꾼의 유전자가 한국적 정서와 미국적 감성을 어떻게 버무려내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시리즈는 총 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에 한국어판 4권이 나오며 모두 완결되었습니다. 1권에서 시작된 미희와 친구들의 자아 찾기 여정은 뒤로 갈수록 더 거대한 세계관과 깊이 있는 질문들로 확장됩니다.


공주가 되고 싶은 평범한 소녀가 실제로 동화 세계에 발을 들였을 때 마주하게 되는 진실을 그려낸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우리가 소녀들에게 들려준 공주 이야기들은 과연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감춰왔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소녀 미희는 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자신이 "머나먼 환상의 세계 속 왕과 왕비의 딸로 태어난, 잊힌 왕조의 공주"라고 믿습니다. 미희에게 공주 놀이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그런 미희가 도서관 사서 라벤더 선생님의 냉장고에서 무지개 맛 사탕을 꺼내 먹고, 친구 리즈와 사바나와 함께 무지개 왕국으로 건너갑니다. 이곳은 미희가 현실에서 느끼던 소외감을 공략합니다. 학교에서는 이상한 아이 취급받고, 집에서는 바쁜 부모님 탓에 뒷전이었던 미희에게 여기라면 너는 특별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겁니다.





하지만 읽는 우리는 본능적인 불안을 느낍니다. 타인이 부여한 공주라는 지위가 과연 자아를 해방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규격의 틀에 가두는 장치가 될까요? 작가는 동화적 환상을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공주가 되기 위해서는 웃는 법, 걷는 법, 말하는 법까지 정해진 매뉴얼을 따라야 합니다. 착한 아이 프레임이나 SNS 속 보여주기식 삶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미희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합니다.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았던 공주의 삶이 실상은 고립된 감옥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요. 미희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게 장갑을 끼고 다니라고 말합니다. 주어진 운명(물레 가시에 찔리는 것)에 순응하지 말고 스스로 방어책을 세우라는 조언입니다. 미희는 이제 박제된 인형처럼 존재하는 공주들을 동정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유지하기 위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이방인들을 제거하려는 왕국의 폭력성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미희와 친구들은 왕국을 탈출하기 위한 사투를 벌입니다. 태 켈러 작가는 미희가 가진 편견을 하나씩 깨부수며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 할 때, 반드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음을 짚어줍니다. 미희는 더 이상 공주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습니다. 대신 미희라는 이름의 평범하고도 위대한 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동화 속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탈피해 자신의 서사를 직접 써 내려가겠다고 말이죠.


미희가 헤맸던 무지개 왕국은 미희 자신의 내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누군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몰라 방황하던 마음이 투영된 거대한 환상처럼요. 태 켈러 작가는 등장인물들과 함께 진흙탕을 구르고 상처받으며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게 만듭니다.





이 책은 단순히 동화 비틀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민자 가정의 정체성, 사춘기 소녀들의 미묘한 우정과 연대 그리고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에 대한 의구심을 판타지라는 그릇에 담아낸 수작입니다.


미희는 이제 압니다. 주인공이란 자신의 발로 어디를 향할지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4권까지 이어질 이 여정이 미희를 어떤 사람으로 성장시킬지 벌써부터 가슴이 뜁니다. 동화 속 유리구두를 벗어던지고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맨 미희의 다음 행보를 열렬히 응원하게 됩니다.


공주 판타지를 빌려 성장의 불안을 해부한 태 켈러의 대담한 모험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냉장고 너머의 왕국』. 미희는 공주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이지만, 그 욕망은 반짝이는 드레스나 왕관에 대한 동경이라기보다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에 가깝습니다.


공주 이야기의 외피를 쓴 성장 서사이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게는 흥미로운 모험담으로, 어른에게는 자신이 지나온 통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고, 어떤 결말을 원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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