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 - 오픈 전부터 줄 세우는 가게들의 성공 전략
신지혜 지음 / 와이즈맵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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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은 골목이 어떻게 브랜드가 되고, 공간이 어떻게 서사가 되는지를 끝까지 추적한 리테일 전략서이자 도시 읽기 보고서입니다.


신지혜 저자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를 거쳐, 20년 넘게 상업용 부동산 개발 현장에서 플레이어와 시장을 연결해온 리테일 디벨로퍼입니다.


저자는 핫플은 갑자기 생기지 않으며, 우연히 성공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대신 한 명 혹은 몇 명의 플레이어가 먼저 들어가 실패를 감수하고, 실험을 반복하며, 그 골목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사람을 불러들이는 과정이 있을 뿐이라고요. 이 책은 바로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핫플을 소비하는 사람의 시선으로만 '요즘 뜨는 곳'을 바라봤다면 이 책은 핫플을 만드는 사람의 좌표로 우리를 데려다줍니다.


용산 은행나무길 사례는 이 책이 얼마나 집요하게 시간을 다루는지 잘 보여줍니다. 대형 개발계획이 수없이 오르내리던 지역, 그래서 오히려 누구도 장기적인 투자를 감행하지 않았던 골목. 저자는 이 공간이 어떻게 플레이어들의 선택을 통해 재해석되었는지를 촘촘히 따라갑니다.





은행나무길의 핵심은 요란하지 않음입니다. 로프컴퍼니를 비롯한 플레이어들은 한옥이라는 물리적 자산을 전면에 내세우되, 그 안의 콘텐츠는 끊임없이 갱신합니다. 한식대첩 명인 팝업, 브랜드 협업, 자체 상품 출시까지 이어지는 실험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이 거리의 리듬을 만드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핫플의 본질이 화제성이 아니라 지속성에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인터뷰 코너들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플레이어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공간 전략으로 번역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로프컴퍼니 박재현 대표 인터뷰는 용산 은행나무길 파트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거리의 변화가 결과라면, 이 인터뷰는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사유의 구조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박재현 대표의 말에서 반복적으로 감지되는 키워드는 속도 조절입니다. 그는 빠르게 확장하거나, 유행을 앞질러 선점하는 방식에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대신 이 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변화의 속도를 존중하고, 플레이어와 고객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시간을 중시합니다. 개발 논리보다는 생활의 리듬에 가까운 접근이며, 그래서 은행나무길이 유난히 편안한 핫플로 인식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 속 인터뷰들을 통해 핫플레이스란 결국 사람의 욕심을 절제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다소 역설적인 깨달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핫플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을 끌어모으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이유를 차분히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서울역 인근 만리재로는 오랫동안 기능만 남은 거리였습니다. 공업사와 기사식당, 빠르게 지나치는 동선만 존재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로7017 개통 이후 이 거리의 운명은 달라집니다.


인상적인 지점은 외국인 관광객이라는 변수입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경유한 외국인 유동이 새로운 소비층으로 유입되며, 만리재로는 로컬과 글로벌이 겹치는 실험장이 됩니다. 교통, 도시계획, 소비 동선이 맞물릴 때 플레이어의 기획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인천 개항로길은 ○○의 경리단길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하는 공간입니다. 이창길 대표의 개항로프로젝트는 외부 시선을 끌어오기보다, 지역 내부의 기억과 감정을 먼저 복원합니다.


핫플을 만드는 일이 결국 지역을 소비하는 행위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개항로길 사례는 플레이어의 태도 자체가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싸전거리로 알려진 신당동 중앙시장 일대는 TDTD의 장지호 대표 같은 플레이어들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거듭났습니다. 신당동 핫플레이스의 성공 핵심은 뛰어난 콘셉트 기획입니다. 숨겨진 입구, 아날로그 감성의 주문 방식을 적용한 공간들이 어떻게 SNS 상에서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왜 이런 장치들이 신당동이라는 맥락에서 유효했는지를 분석합니다.





이어서 이미 명성이 있었거나 혹은 철저히 잊혔던 상권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들에 의해 어떻게 리디자인되고 부활하는지를 다룹니다. 도산공원, 광주 시너지타워, 익선동, 연희동, 동묘 상권의 사례는 리테일 전략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높은 공실률에 시달리던 도산공원은 GFFG의 김동현 이사 등 F&B 플레이어들의 노력으로 젊은 세대의 쇼핑 및 미식 메카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도산공원의 사례는 기존의 고급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기보다는 트렌디한 젊은 감성을 덧입히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광주 첨단지구의 시너지타워 사례는 플레이어의 역할이 단순히 개별 매장을 오픈하는 것을 넘어, 대형 공간 기획을 통해 지역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너지타워의 오정현 부사장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상권은 철저히 계획된 변화를 기반으로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디벨로퍼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단순히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는 것을 넘어, 테넌트와 콘텐츠의 니즈를 사전에 파악하여 하나의 큰그림을 만들고,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디벨로퍼의 역량이 어떻게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창조하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성북천 일대, 청량리, 장충동처럼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미니 핫플레이스들을 다루며, 차세대 핫플을 기대하게 하는 새로운 좌표를 보여줍니다.


주민들의 산책로였던 성북천이 감성 카페거리로, 춘천 가는 기차역이었던 청량리가 글로벌 로컬시장으로, 재벌집 거실 같은 콘셉트의 장충동 카페까지, 이 모든 변화는 핫플레이스의 핵심이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시켜 줍니다.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은 상권 기획자, F&B 창업자, 부동산·콘텐츠 업계 종사자에게 유의미한 책이면서도, 요즘 뜨는 공간을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 싶은 일반인에게도 유용한 책입니다. 도시를 읽는 눈이 한 단계 확장되는 경험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 책을 읽고나니 '이 골목의 첫 플레이어는 누구였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릅니다. 줄 서는 가게 뒤에는 반드시 줄 서서 고민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즐겁습니다. 불황을 뚫고 골목을 브랜드로 만드는 플레이어들의 성공 비결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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