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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 셰익스피어가 그린 권력과 정치, 그리고 악랄한 독재자들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김한영 옮김 / 까치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떻게 한 나라 전체가 폭군(tyrant)의 손에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의 희곡들 속에 등장하는 악랄한 통치자들을 해부한 『폭군』. 리처드 3세, 맥베스, 리어 왕, 코리올라누스... 이들의 광기와 잔혹함, 그리고 그들을 권력의 자리에 앉힌 사람들의 심리를 파헤칩니다.
퓰리처상 수상자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6세기 말 영국의 정치적 환경을 복원하며, 검열과 감시 속에서 한 극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관찰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셰익스피어는 공개적인 정치 비판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연극은 대중적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로 더욱 엄격한 검열 대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의 병리와 폭정의 구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정면 돌파가 아니라 비스듬한 시선이었을 뿐입니다. 고대 로마, 중세 영국, 가상의 왕국을 무대로 삼아, 자기 시대의 정치적 긴장을 우회적으로 비추었습니다.
이런 우회적 서술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특정 정권의 풍자를 넘어 권력 일반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폭군은 특정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반복되는 조건의 산물이라는 점을 셰익스피어는 이미 알고 있었던 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6세』 3부작을 중심으로 폭정이 시작되는 초기 단계를 분석합니다. 저자는 폭군 개인보다 먼저 정치 환경을 문제 삼습니다.
정당은 원래 공공선을 위해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그린 세계에서 정당은 점차 반대를 위한 반대에 매몰됩니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악마화하고, 정책보다 진영 논리를 앞세우며, 장기적 비전보다 단기적 승리에 집착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 언어는 점점 거칠어지고, 시민의 판단력은 피로해집니다.
저자는 이 지점을 짚습니다. 폭군은 혼란을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 이미 혼란스러운 공간을 점령하는 자라는 사실입니다. 정당정치가 기능을 상실할수록, 강력한 단일 목소리는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구호로 정리해주는 지도자는 언제나 환영받기 마련이니까요.
포퓰리즘의 작동 방식을 해부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세계에서 군중은 늘 어리석게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노하고, 실망하고, 불안해합니다. 문제는 이 감정이 어떻게 조직되는가입니다.
포퓰리스트는 대중의 고통을 말하지만, 원인을 단순화합니다. 책임은 언제나 '그들'에게 있고, 해결책은 '나'에게 있다는 구도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이런 정치적 언어의 위험성을 간파했습니다.
폭군은 혼자 오지 않습니다. 그를 밀어 올린 것은 군중의 선택이었고, 침묵이었고, 계산된 타협이었습니다. 『리처드 3세』에서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폭군 리처드 3세가 압권입니다. 폭군은 항상 혐오스러운 존재로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솔직해 보이며, 기존 질서를 조롱하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조롱에 웃는 순간, 이미 공모자가 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리처드의 뻔뻔함과 거침없는 악행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셰익스피어는 이처럼 대중의 매료를 목격합니다.
저자는 폭군을 만드는 조력자들의 유형을 정리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폭군에게 줄을 서는 '기회주의자', "에이, 설마 진짜 그러겠어?"라며 안일하게 대처하는 '현실 부정파', 공포에 질려 입을 닫아버리는 '침묵의 동조자' 등... 이들이 모여 거대한 파국을 완성합니다.
『맥베스』와 『리어 왕』을 통해서는 폭정의 심리적 조건을 탐구합니다. 권력을 향한 불안, 상실에 대한 공포,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이 결합될 때 폭정은 급격히 심화됩니다.
리처드 3세와 맥베스는 자신을 방해하는 정통 군주를 죽여 권력에 오른 범죄자입니다. 『맥베스』는 권력을 쥔 자가 느끼는 극한의 불안을 보여줍니다. 맥베스는 권력을 잡은 뒤에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살인을 멈추지 못합니다. 반면 『리어 왕』은 권력자의 오만함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저자는 맥베스 부인처럼 폭군을 부추기는 인물들과 코델리아처럼 끝까지 진실을 말하려는 인물들을 대조시키며, 권력의 주변에서 우리가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지도자의 사적인 불안이 공적인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면 지도자의 정신 건강이 국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게 됩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일말의 희망을 건져 올립니다. 폭군은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그 내면은 이미 썩어 문드러져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폭군이 오래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립과 의심, 분노는 종종 오만한 과신과 결합하여 몰락을 재촉하니까요. 폭군은 타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조직을 관리하지 못합니다. 유능한 인재들은 떠나고 예스맨들만 남은 조직은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극의 결말에서 항상 질서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폭정을 묘사하는 연극은 공동체의 재건과 공정한 질서의 회복을 가리키며 끝이 납니다.

셰익스피어는 사회 집단이 품위를 되찾을 가장 큰 가능성은 평범한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짚어줍니다. 『리어 왕』에서 폭군의 명령에 불복종하며 포로의 눈을 뽑기를 거부했던 이름 없는 하인처럼, 시스템의 부당함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평범한 개인들의 용기가 폭정을 막는 유일한 방패라는 것입니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분석하는 문학 비평서가 아닙니다. 셰익스피어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 내면의 비겁함과 정치를 바라보는 게으름을 비추는 사회 고발서에 가깝습니다. 폭군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분열, 침묵, 그리고 자극적인 포퓰리즘에 대한 열광을 먹고 자라는 괴물입니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는다면, 무대 위의 비극은 언제든 현실의 역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