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3개 외웠으면 밴드를 하자!
사류 지음 / 언더그라인드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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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코드 세 개로 밴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밴드 활동을 대단한 실력자들의 영역으로만 여기던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질문입니다. 단순히 밴드 활동의 기술적 난이도를 묻는 것을 넘어, 밴드를 둘러싼 사회적, 심리적 장벽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밴드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 여겨온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밴드 나후(Nahu)의 리더로 활동 중인 사류 저자의 『코드 3개 외웠으면 밴드를 하자!』. 펑크, 하드코어, 메탈 등 한국과 해외의 언더그라운드 씬을 대표하는 16개 현역 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밴드 활동의 A부터 Z까지, 그 모든 궁금증과 노하우를 허심탄회하게 풀어냅니다. K-POP 너머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뜨거운 심장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재밌있는 구성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가며'가 먼저 나오고, 본격적인 서사가 뒤따르는 구성은 무대 위로 나가는 밴드 활동을 닮았습니다. 무대 위로 독자를 밀어 올리는 느낌도 듭니다. 이 책의 구성은 저자의 메시지와 정확히 겹칩니다. 밴드는 음악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요.


저자는 정말 코드 세 개로 밴드를 시작할 수 있는가라는 공통 질문을 현역 밴드에게 던집니다. 서울돌망치는 "세상에서 부품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고 뭘 만들고 있구나 내가 여기서. 스스로 발전기가 돼서 그런 느낌"이라고 고백하며, 밴드를 음악 활동 이전에 존재 방식의 전환으로 정의합니다. 회사와 사회의 톱니바퀴로 기능하던 개인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감각. 코드의 개수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감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입니다.


누군가는 연주 실력에 대한 강박을 해체합니다. 밴드 비컨은 "저희는 코드가 없습니다. … 아무튼 저희는 코드가 없어요."라며 기술의 부재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짚어줍니다. 밴드는 학교 성적표처럼 측정 가능한 능력의 총합이 아니라, 시행착오를 감당할 배짱과 지속성의 예술입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창조하는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대변합니다.


잠비나이는 코드 세 개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밴드입니다. 국악의 장단과 금속성 사운드, 긴 호흡의 곡 구조까지 떠올리면, 오히려 복잡한 음악의 상징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잠비나이가 1부, 즉 밴드를 시작하는 이야기에 배치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사류 저자가 말하고 싶은 '시작'이 결코 음악적 난이도나 장르적 간명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잠비나이의 서사는 밴드란 처음부터 명확한 목적지를 알고 출발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언어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로 도달하게 되는 자리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코드가 적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만의 질서를 믿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던 잠비나이입니다. 어쩌면 초심자란 연주 실력이 낮은 사람이 아니라, 아직 자기 목소리를 끝까지 밀어본 적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2부에서는 코드 세 개 너머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시작할 수 있다는 문제를 넘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밴드를 시작한 이후 겪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 즉 지속 가능한 활동과 밴드의 지향점에 대한 지혜를 공유합니다.


누군가는 음악을 현실과 분리하여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에 반박합니다. 음악을 전업으로 하지 않으면 진정한 음악가가 아니라고 여기는 시선에 대해 현실적인 목소리로 반박합니다.


누군가는 실력의 기준을 재정의 하기도 합니다. "자기가 확고하게 갖고 있는 것 그걸 누구보다도 잘 칠 수 있는 거 그 정도만 가지면 완벽하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저마다 자기 영역이 있는 겁니다. 비교와 평가에 지친 창작자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음악은 종목별 경기처럼 동일한 규칙에서 겨루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링 위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부족함은 결함이 아니라, 스타일의 출발점이 됩니다.





3부에서는 코드 세 개보다 넓은 세계로 확장합니다. 해외 밴드들과도 동일한 질문을 공유하며 밴드 활동이 가지는 보편적인 가치와 한국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국제적 위상을 조명합니다.


해외 공연이나 투어는 왠지 모르게 성공한 밴드만이 할 수 있는 꿈같은 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사류 저자는 막연한 환상을 걷어내고, 해외 활동을 일상의 확장으로 재정의합니다. 밴드 '나후'의 리더로서 수십 년간 밴드 활동을 지속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밴드 활동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밴드 활동의 성공 요인을 배짱과 자신의 목소리라는 후천적 태도에서 찾습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밴드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며 자신감을 불어넣습니다.


『코드 3개 외웠으면 밴드를 하자!』는 밴드를 권유하는 책이지만, 동시에 자기 삶을 직접 연주해 보라고 권하는 책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내는 삶은 어렵지 않다는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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