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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미래 과학 트렌드 - 한 권으로 따라잡는 오늘의 과학, 내일의 기술
국립과천과학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AI부터 블랙홀까지, 국립과천과학관이 던진 2026년의 질문들 『2026 미래 과학 트렌드』. 전망서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우리는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전시와 교육, 체험을 통해 과학을 설명해 온 국립과천과학관 소속 생명과학자·천문학자·공학자·과학교육자·과학사 연구자 등 25인이 공동으로 집필했습니다. 연구실과 전시관, 정책 현장과 교육 현장이 한 권의 책 안에서 함께 담겼습니다.
과학을 성과로 요약하지 않고, 과학이 작동하는 맥락을 드러냅니다. 기술의 속도보다 선택의 무게를, 발견의 결과보다 과정의 윤리를 더 자주 이야기하는 과학 트렌드 책입니다.
생명과학 파트는 저속노화라는 키워드를 선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화는 미용 산업이 소비해 온 표피적 개념이 아닙니다. 생명체 내부에서 작동하는 시간의 질서, 즉 생체 시계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에 가깝습니다. 식물과 인간의 생체 시계 메커니즘은 매우 유사하게 24시간 주기의 생리 리듬을 조절하며, 수면·성장·노화까지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노화를 개인의 생활 습관이나 유전적 운명으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식물 연구에서 출발한 생체 리듬 연구가 인간의 노화 이해를 어떻게 확장시키는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과학은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생명체가 시간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통찰을 짚어줍니다.
이어지는 인공 혈액, 종자 보존, 기생벌 연구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생명과학은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이 아니라, 생명이 지속될 조건을 탐색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노르웨이 스발바르 시드볼트와 연결되는 종자 보존 이야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생명 보존이 곧 정치와 윤리의 문제임을 자연스럽게 환기합니다.
화학 파트는 기후위기 담론에서 자주 간과되는 질문을 다룹니다. 왜 우리는 아무리 분리배출을 해도 한계를 느끼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개인의 윤리 대신 기술 시스템의 구조적 전환에 초점을 맞춥니다.
플라스마 전환 공정이라는 생소한 기술이 소개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분리배출을 잘하자는 도덕적 구호를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입니다. 희토류, 수소에너지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정치, 지역 공동체, 정책 선택과 얽혀 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화학이 산업의 언어로만 존재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지구과학 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키워드는 AI이지만, 이 장의 진짜 주제는 시간입니다. 인공지능은 화석의 형태, 색, 입자 크기, 화학 성분의 패턴을 스스로 분류하며 지층의 시간을 읽어낸다고 합니다. 지질학의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과거의 지질학자가 망치와 루페로 시간을 추적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이 그 역할을 이어받습니다. 물론 AI가 읽어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임을 강조합니다.
고층 목조 건축, 탄소 순환, 구름 관찰에 이르기까지 지구를 관리 대상이 아닌 해석 대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기후위기를 둘러싼 진영 논리를 벗어나, 과학적 데이터가 어떻게 사회적 합의로 이어질 수 있는지 고민하는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우주과학 파트는 감탄과 압도감으로 가득합니다. 루빈 천문대는 날마다 우주를 관측하며 20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성한다고 합니다. 우주는 읽히고, 분류되고, 예측됩니다. 중간질량블랙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최신 성과들은 인간 인식의 경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 싶은가를 묻습니다. 질문 없는 관측은 의미를 잃는다는 사실을, 우주과학이라는 가장 거대한 학문을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과학기술 파트에서는 챗GPT를 비롯해 초지능,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인공지능이 왜 지금의 위치에 이르렀는지, 과거의 실패와 컴퓨팅 자원의 한계까지 짚으며 설명합니다. 핵심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의 관계 설정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AI가 물리학 연구자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음을 역설하기도 합니다. AI를 통해 연구 설계와 복잡한 모델링이 자동화되면서, 물리학 연구는 비로소 근본적인 혁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물리학과 AI를 능숙하게 다룰 융합 연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과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문적 길을 보여줍니다.

매년 큰 기대를 모으는 2025 노벨상 특강 해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물리학상, 생리의학상, 화학상의 수상 업적에 대한 배경 지식을 쉽게 풀어주는 것은 물론, 특별히 이번 편에서는 과학이 산업 현장과 맞닿아 경제 성장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담은 노벨경제학상 해설을 추가했습니다. 과학과 산업, 시장의 연결 지점을 보여줍니다.
『2026 미래 과학 트렌드』는 과학사의 큰 흐름을 훑으며 우리가 선택해온 과학기술의 진화 양상을 들려주고, 심지어 일제강점기 과학기술자들의 독립운동과 같은 역사적 사실까지 꼼꼼하게 조명하고 있어 매력적입니다. 과학이 사회와 어떻게 공진화해왔는지 다채로운 방식으로 만나게 됩니다.
미래 과학을 안다는 건, 기술이 아니라 선택을 읽는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진이 그려낸 과학의 풍경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