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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 - 일본의 퀀텀점프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5년 12월
평점 :

*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현대까지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고자 오랜 시간 연구를 거듭하며 <한일 근대인물 기행> 등 다수의 저서를 펴낸 한일 근대사 전문가 박경민 저자의 신작 『메이지 유신』.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에도만(현 도쿄만)에 출현한 순간부터 약 40년간 일본을 휘몰아친 전 분야에 걸친 대변혁, 즉 메이지 유신의 전모를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해부한 역작입니다.
메이지 유신을 둘러싼 정치, 외교, 군사, 경제, 교육,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을 입체적이고 시각적으로 조명합니다. 메이지유신을 알려면 이 책만 읽으면 된다는 평가를 목표로 쓴 책이라고 고백합니다.
일본인들의 이름을 최소화하여 스토리 전개의 가독성을 높여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습니다. 전문서 같은 깊이와 대중서의 가독성을 겸비한 이 책은 270년간 평화롭게 유지되던 에도 막부가 어떻게 종말을 고하고, 일본이 단기간에 신흥 패권국으로 퀀텀점프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추적합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전 시대인 에도 막부의 통치 체제와 모순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저자는 서장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1603~1867)가 앞선 두 번의 막부(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와 달리 어떻게 260여 년간 안정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는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이 완벽하게 설계되었던 봉건 체제는 오히려 현실에 맞지 않는 불합리성과 모순을 노출하게 됩니다. 저자는 에도 막부의 통치 체제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던 구조적 취약성에 주목합니다. 수백 년간 지속된 평화는 역설적으로 서양 세력이라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만들었고, 이 허점을 메이지 유신 주도 세력이 파고들게 됩니다.
결국 구체제의 단단한 껍데기를 깨고 근대화를 성취하는 데는 서양 세력의 충격에도 땅속 깊이 뿌리내린 조선의 왕조 체제보다 쇼군이 천황에게 권력을 잠시 맡겨두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막부 체제가 훨씬 유리했다는 분석이 흥미로웠습니다.
1853년 페리 함대의 내항과 개항은 270년 평화 체제의 방파제를 무너뜨린 파국적 사건이었습니다. 책 초반에는 소용돌이 속의 막부와 웅번들의 서구 따라잡기 경쟁에 대해 짚어줍니다. 막부와 반막부 세력 모두가 서구 문물과 정보에 대한 갈증이 컸고, 경쟁적으로 사절단과 유학생을 파견하며 근대화 시간을 단축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서구 사절단에 참여해 충격을 받은 후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로 우뚝 선 후쿠자와 유키치와 그의 저서 <서양사정(西洋事情)>을 다룹니다. 1866년에 발간한 이 책에서 유럽과 미국의 정치, 조세, 국채, 회사, 외교, 군사, 교육, 신문 등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소개하여 지식층에게 폭발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이 나아가야 할 근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유신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신을 주도한 삿초도히(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 네 웅번들의 경쟁과 연합 과정은 역동적입니다. 조슈번이 고난을 겪다가 기사회생하는 극적인 이야기와, 사카모토 료마 등의 활약으로 삿초동맹이 성사되고 마침내 막부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전개됩니다. 복잡한 과정이 저자의 설명 덕분에 흐름이 또렷해집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봉건 체제의 해체와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완수한 위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왕정복고 쿠데타를 통해 신정부를 수립한 유신 주도 세력은 근대국가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5개조 서문을 대내외에 천명합니다.
이 5개조 서문을 바탕으로 신정부는 정치 체제의 대변혁을 시작했고, 수백 년간 이어진 다이묘의 세습 직위와 영지 통치권을 천황에게 귀속시킴으로써 봉건제를 최종적으로 해체했습니다. 이는 중앙 정부에 직속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번(藩)들을 해체하는 매우 위험하고도 혁명적인 결단이었습니다.
또한, 저자는 이와쿠라 사절단의 파견과 그들이 귀국 후 각 분야에서 일본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례를 통해 일본의 학습 능력을 보여줍니다. 사절단 파견은 서구 문물 견학을 넘어, 학제·징병제와 태양력 실시를 비롯해 핵심 근대화 정책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1871년 단발령과 양복의 보급, 천황이 직접 육식을 권장하여 식생활을 바꾼 사례, 서양식 건물로 조성된 도쿄 긴자 거리, 그리고 1877년 전화 개통 등 구체적인 예시들은 일본 사회가 얼마나 급진적으로 서구화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정한론(征韓論)에 대한 분석은 한국인에게 중요한 통찰을 안겨줍니다. 정한론 논쟁이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불리는 정치사의 대변혁으로 귀결되어 강경파가 실각하게 된 과정을 다루며, 메이지 신정부의 외교가 단순한 정복욕을 넘어 근대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자 했다는 맥락을 짚어줍니다.
메이지 유신은 피를 보지 않은 명예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사족들의 반란과 저항이 격렬했던 시기를 거쳤다고 합니다. 보신전쟁(戊辰戦争), 세이난 전쟁(西南戦争) 등 신정부에 대한 반동과 저항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저자가 짚어주는 핵심은 유신 주도 세력의 포용성입니다. 신정부는 보신전쟁에서 패배한 막부 측 인재들을 숙청하는 대신, 능력이 뛰어난 인재들에게는 중요 직책을 맡겨 신정부 건설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메이지 정부 발전의 결정적인 동력이었습니다.
포용성을 바탕으로 메이지 정부가 근대국가로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자유민권운동의 발전이 헌법 준비와 내각제 창설이라는 결실을 맺고, 마침내 대일본제국 헌법 제정과 국회 개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서구 근대국가의 틀을 단기간에 구축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메이지 정부의 숙원이었던 불평등조약 개정과 교육제도 및 징병제의 정착은 일본이 서구 열강과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한 마지막 단계를 완성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책은 메이지 유신을 다룬 기존의 역사서가 정치·행정적인 제도 개혁을 나열하는 데 그쳤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박경민 저자는 유신 정책을 추진하는 주도 세력의 입장은 물론, 이에 반발하고 동참하는 국민(사무라이 포함)의 시각에서 이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메이지유신』은 변화에 실패한 체제의 조건과 변화에 성공한 사회의 내부 논리를 대비합니다. 특히 한일 근대사를 비교하는 통찰과 인재에 대한 유신 정부의 과감한 포용성을 부각한 관점은 메이지 유신의 성공을 특정 집단의 영웅 놀이가 아닌 국가 시스템의 혁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봉건에서 근대로 40년, 일본의 모든 혁신 DNA가 이 한 권에 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