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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가까운 자연 - 조경이란 인간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일이다
전진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일상을 다시 보게 만드는 조경의 놀라운 반전 『조경, 가까운 자연』.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늘 자연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전진형 교수는 뜻밖의 사실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이미 자연 한가운데 살고 있었다고. 다만 눈을 뜨지 못했을 뿐이라고.
『조경, 가까운 자연』은 그 눈뜨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나무 한 그루, 벤치 하나, 골목의 빛과 바람까지 모든 일상이 조경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익숙함의 장막 뒤에서 묵묵히 인간을 돌보고 있던 조경을 다시 보게 하는 것. 숲과 공원 이야기를 넘어 도시가 어떻게 우리 마음, 건강, 이동, 역사, 공동체를 형성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
매일의 풍경을 다시 보라고 권합니다. 출근길의 가로수, 점심 산책길의 작은 녹지, 퇴근길의 공원 벤치. 이런 공간들이 왜 편안한지를 설명하려면 설계된 자연이라는 개념을 떠올려야 합니다.

가로수의 수종 선택, 계절별 빛의 각도, 발걸음의 흐름, 소음의 분산까지 모두 조경의 영역입니다. 사람의 감각을 계산한 디자인이 도시의 피로도를 조절하고 삶의 호흡을 만든다는 사실은 조경을 있으면 좋은 것 정도로 생각해왔던 인식을 흔듭니다.
경의선숲길을 걸으면 흙, 자갈, 목재 데크 등 다채로운 바닥 질감이 발로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도시인이 상실한 감각을 되찾게 하는 일이 조경의 첫 번째 역할이라고 설명합니다.
북촌의 지루함은 이 지역이 조경적 관점에서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지나친 관광지화로 인해 주거·길·상업·문화의 동선이 흐트러지면서 감각적 긴장감이 사라진 겁니다. 도시의 활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묘한 조정 위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자는 보존적 재생을 강조합니다. 기존의 구조물을 존중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히는 가능성 말입니다. 선유도는 정수장의 콘크리트를 철거하지 않고 공원의 주요 구조로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 공간은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감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투명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서울 곳곳에서 이어진 경의선숲길, 문화비축기지 등은 바로 이 실험이 남긴 파급효과입니다.

저자는 도시를 여섯 개의 층위로 해독합니다. 하늘공원과 포틀랜드 일본 정원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각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바람 소리, 물 흐름, 잎의 떨림 같은 미세한 감각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감정의 진폭을 완화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머물고 싶은 공간의 비밀입니다.
이어서 도시 속 보이지 않는 생명 네트워크인 생태적 기능을 조명합니다. 한 마리 새가 남산에서 북한산까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가며 서울 전체의 생태 네트워크 구조를 분석합니다.
그 외에도 공유 정원과 커뮤니티 조경을 통해 공동체를 자라나게 하는 문화 기능을 소개합니다. 순천만국가정원, 미국 밀 크릭 프로젝트, 영국 토드모든의 인크레더블 에더블 운동은 정원이 교육과 참여, 나눔의 장으로 확장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폐허를 보존하며 과거의 층위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 로마의 포로 로마노와 역사적 장소를 복원하며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택한 경주, 두 관점을 융합시킨 베를린 신 박물관을 소개하며 조경이 다루는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가 어떻게 정원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경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본 결과 다층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국내에서도 대장 아파트일수록 전체 공사비 대비 조경비 비율이 높다는 분석은 흥미롭습니다. 조경의 질이 곧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가로수의 증산작용이 주변 온도를 낮추고, 잎이 미세먼지를 흡착하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를 수치로 증명하는 것. 이런 과학적 접근이 '조경은 있으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조경은 도시 생존의 필수 인프라'로 바꾸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도시 열섬, 정신 건강 악화 등 도시가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조경적 해법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도시의 회복력을 중심으로 감각, 생태, 사회, 역사, 경제, 과학의 층위가 상호작용할 때 비로소 도시는 스스로 회복하는 힘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제주 곶자왈이 개발 위기를 겪었을 때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세대와 지역을 잇는 연대의 공간으로 재탄생한 사례를 통해 도시의 구성원과 공간, 자연의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2022년 강남역 침수 피해를 상기시키며 기후적응형 조경이 제공하는 경제적, 기능적 효과를 분석합니다. 세종대로 빗물정원 사례를 통해 충분한 빗물정원과 투수성 포장이 갖춰졌다면 침수 피해를 상당 부분 줄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조경이 미래의 손실을 줄이는 보험이자 저축이며, 하나의 시설이 다층적 이익을 창출하는 스마트한 인프라임을 보여줍니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조경가의 해법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생활 속 운동량을 늘리는 걷고 싶은 거리 조성과 노약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설계가 공공보건 비용을 감소시키고 병원 방문을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만들어가는 풍경은 다음 세대가 살아갈 환경이 되며,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조경이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유산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조경, 가까운 자연』은 도시를 다면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