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 - 투자의 초석을 쌓는 부자 수업
김치형 지음 / 포르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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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복잡한 경제 뉴스를 명쾌하게 해설하는 경제 전문 큐레이터, 김큐 김치형 앵커가 안내하는 매혹적인 인문학적 경제 교양서 『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 딱딱한 숫자와 그래프 대신,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명화 속에서 자본과 산업의 비밀을 읽어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 작품을 통해 오늘날의 투자와 경제 원리를 이해하는 투자의 초석을 쌓는 부자 수업을 만나보세요. 저자가 15년 넘게 취재한 경제 현장의 감각은 미술의 서사와 결합되어 독특한 서사형 경제 스토리텔링으로 선보입니다.


국가 권력의 핵심이자 모든 경제 주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금과 무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모네의 〈세관 오두막〉 시리즈에서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소환합니다. 프랑스 혁명 후 혼란기를 수습하고 유럽을 제패했던 나폴레옹의 몰락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영국과의 교역을 끊으려 했던 대륙 봉쇄령은 오히려 유럽 전체 경제를 붕괴시키고, 프랑스 해안에는 모네가 그린 듯한 세관 오두막들만 우후죽순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보호무역 조치라는 거시적 정책이 결국 밀무역과 세관 오두막 같은 미시적 풍경을 만들어냈음을 모네의 그림이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 정책이 현장에 미치는 영향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나 보호무역주의가 가져올 파급 효과를 예견하는 듯합니다.


왕가의 상징이었던 루이 14세의 붉은 하이힐은 국가의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했던 구조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등장합니다.


프랑스 구체제의 재정 위기는 소금세(Gabelle)라는 악명 높은 세금으로 귀결되었는데, 소금을 의무적으로 구매해야 했고 그 가격의 10배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귀족과 종교인에게는 이 세금이 면제되었고요. 세금의 부과 기준뿐 아니라 그 구조적 불균형이야말로 민심을 폭발시키는 뇌관이었음을 짚어줍니다.


세금이 공정성을 잃을 때 어떤 정치적 폭발을 유발하는지 보여줍니다. 경제 뉴스 속의 조세 논쟁은 과거 절대왕정의 가혹한 세금제도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합니다.


무역·금융·공급망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그림 속 작은 요소로 설명합니다. 쿠엔틴 마시스의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는 그가 그림 속의 물건 배치나 인물의 표정으로 돈을 향한 인간의 탐욕을 풍자했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인간의 욕망과 금융 시스템의 원형을 포착합니다. 환전상을 전당포·대부업자로 비교하며 금융업이 어떻게 사회적 불신의 장벽을 뚫고 현대적 금융 구조로 진화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쇠라의 점묘 기법이 FOMC의 금리 전망 점도표와 연결된다는 해석도 참신한 관점입니다. 개별 점이 모여 큰 그림을 만든다는 구조적 유사성을 통해 금리 정책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저자는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이 왜 우리의 배달비, 전기요금, 주유비로 직결되는지 설명하며, CPTPP·관세·연준의 정책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묶어냅니다.


『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는 노동과 에너지의 역사를 산업 혁명의 서사 안에서 명화 속 장면을 통해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반 고흐의 노란빛 가로등 그림은 공공 인프라 구축의 대가로 부과된 세금의 역사를 품고 있었습니다.


1600년대 후반, 밤의 어둠을 몰아낸 암스테르담의 가로등 시스템은 범죄율을 낮추고 상인들의 활동 시간을 늘려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했지만, 그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세금 인상으로 충당되었습니다.


도시의 편리함과 안전, 즉 사회적 편익은 결코 공짜가 아니며, 그 이면에는 늘 세금이라는 비용 부담이 뒤따른다는 경제 원리를 고흐의 노란빛 아래에서 깨닫게 합니다.


에너지 전환의 역사를 다룬 부분 역시 흥미롭습니다. 인류가 어둠을 몰아내고 산업을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잔혹한 대가를 치렀는지를 향유고래의 기름을 얻기 위한 포경 산업을 통해 보여줍니다. 이는 곧이어 폭발하는 유전 그림과 연결되며, 자원 탐욕의 역사가 석유 시대에도 반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초커 목걸이와 단두대를 연결한 이야기는 사치와 몰락, 그리고 사회적 긴장이 빚어낸 역사적 아이러니를 통해 소비의 윤리성까지 생각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업과 기술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해왔는지를 명화와 유물 속에서 찾아냅니다. 진주 목걸이가 삼성의 애니콜 신화와 연결되는 과정, 그리고 오페라 글라스가 반도체 노광 장비 회사 ASML의 기술 독점력과 비견되는 분석이 돋보입니다.


특히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가 그린 〈코펜하겐 증권거래소에서〉 그림에 담긴 제작비 조달의 비밀은 자본 시장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에 그려진 인물들의 위치에는 일종의 자릿세가 책정돼 있었는데, 증권거래소가 기부 명목으로 이들에게 돈을 받아 그림의 제작비를 충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앞쪽 가장 눈에 띄는 자리는 800크로네, 사람이 몰려있는 중앙 자리는 500크로네 그리고 그 뒤쪽은 300크로네. 이렇게 말입니다. 명화 속 인물의 위치가 자릿세라는 기부금, 즉 자본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은 예술 작품마저도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증명합니다.


오늘날 대형 투자나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 노출과 영향력이라는 대가를 주고받는 철저한 자본 논리 위에 서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저자는 난해한 경제 용어들을 명화 속 서사와 연결하며 경제 기사를 맥락 있는 이야기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한 점 그림으로 읽는 경제』는 예술 교양서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읽는 깊이 있는 경제 지침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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