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 - 우리 동네 열두 달 식물 이야기
황경택 지음 / 황소걸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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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자연은 힐링을 위해 일부러 떠나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집을 나서면 보도블록 사이에서 여러 풀꽃이 피고, 버스 정류장에 은행나무가 서 있지만 예사롭게 바라보진 않았습니다.


생태놀이연구소 소장 황경택 작가는 『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 우리 동네 열두 달 식물 이야기』에서 자연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도시 속에서도 생명이 호흡하고 있음을 세밀한 관찰과 따뜻한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줍니다.


열두 달 동안 아빠와 아이가 함께 걷는 식물 산책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시간, 계절의 리듬 그리고 생명의 언어를 되살립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마다 네다섯가지 식물을 소개합니다. 만화와 세밀화가 배치되어 있고, 식물에 얽힌 생태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유가 함께 녹아 있습니다.


1월. 새해와 함께 피어나는 관찰의 눈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생명이 움트는 겨울눈을 발견합니다. 눈에 덮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새해의 다짐처럼 조용히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겨우내 열매를 달고 있다는 팥배나무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삭막한 겨울, 빨간 열매를 매단 팥배나무를 보며 새에게 도움을 주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배웁니다. 인간의 효율 논리로 보면 쓸모없어 보이지만, 자연의 지혜를 건져올립니다.


"쓸모는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고, 생태를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는 작가의 말에 뜨끔합니다. 『아빠와 함께 식물 산책』이 안겨주는 생태 철학을 되새겨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건 개나리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익숙함 속의 무지를 짚어냅니다. 평범한 개나리도 관심을 가지면 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고 합니다. 이름을 안다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짚어줍니다.


관찰의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름은 분류를 위한 도구일 뿐, 관계를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는 산책길에서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보는 법을 배웁니다. 식물의 이야기를 넘어,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토끼풀 꽃은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시든다고 합니다. 벌이 헛걸음을 하지 않도록 한 배려라고 말이죠. 토끼풀은 친절한 식물입니다. 자신이 이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태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를 배려합니다.


그런데 그 친절이 결국 자기 생존으로 돌아옵니다. 사회는 종종 배려를 약함으로, 이타심을 손해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자연은 그 반대의 진실을 보여줍니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들려주는 주목 이야기도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주목은 빨간 과육 안에 씨앗이 있는 열매를 맺는데, 항암제인 탁솔의 성분이 주목 씨앗에서 추출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목은 죽음의 나무이자 생명의 나무입니다. 독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그 독은 병을 치유하는 약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은 흑백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늘 변화하고,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매 장마다 식물의 생태적 특징을 설명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삶과 감정을 비춥니다. 팥배나무의 인내, 등나무의 의존, 박주가리의 경계, 상수리나무의 헌신…. 모든 이야기는 자연을 통해 인간을 다시 배우는 여정이 됩니다.


이야기와 그림으로 이루어져 아이에게는 자연의 교과서로, 어른에게는 생태적 성찰의 입문서가 됩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느림의 학습이자 공감의 기술을 전수하는 특별한 교과서입니다. 황경택 생태 작가가 건네는 1년 열두 달, 우리 동네 식물 인문학 산책을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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