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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의 윤리 - 인간의 도리를 지키려는 우리의 선한 본성에 대하여
                    이권우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년 넘게 도서평론가로 활동하며 고전부터 현대 철학·과학·역사까지 넘나드는 글쓰기를 이어오는 이권우 저자가 맹자를 소환합니다.
『최소한의 윤리』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위기들 - 불평등·전쟁·기후 위기 속에서 도덕적 합의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지 묻습니다. 그런데 맹자를 불러낸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은 이익과 욕망을 좇는 계산 대신 최소한의 인륜과 관계성을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윤리』는 2300년 전 맹자의 목소리를 빌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질문에 답합니다. 이익과 욕망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최후의 보루, 바로 인의(仁義, 사랑과 의로움)의 정신을 재발견하는 여정입니다.

맹자와 양혜왕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위기에 몰린 양혜왕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안이 무엇이냐고 묻자, 맹자는 "왕께선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답합니다. 양혜왕이 어떻게 선량한 의도에서 시작해 결국 빌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왕이 내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까 고민하면 대부(지배층)는 내 가문을 어떻게 이롭게 할지 고민하고, 서민 역시 자기 한 몸을 이롭게 할 방안을 찾게 마련이다"라는 맹자의 통찰을 현대 신자유주의 경쟁 체제와 연결해 해석하는 대목이 빛납니다.
국민을 위한다, 회사를 위한다는 말이 사실은 내 권력을 위한다는 변주에 불과할 때, 우리는 양혜왕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결국 빌런이란 영웅을 흉내 내지만 욕망에 매몰된 얼굴입니다.
맹자는 이익의 정치가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간다고 보았습니다. GDP 성장률을 내세우며 사회적 불평등을 방치하는 정치, 기후 위기를 알면서도 탄소세를 회피하는 정치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덕의 정치는 관계와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저자는 이를 공멸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정치적 상상력이라 부릅니다.
맹자가 제시한 대안은 인의(仁義). 부모를 사랑하고 타인의 처지를 헤아리는 마음, 부정의에 맞서는 용기입니다. 저자는 이를 관계의 윤리로 해석합니다. 온라인 혐오 댓글을 멈추게 하고, 기후 위기의 현장에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게 하는 힘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한 욕망을 부추기는 존재론의 시대를 끝장내고, 관계론의 세상을 다시 열어야 한다는 데 있다."라며 관계론의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윤리라 역설합니다.
저자는 맹자를 지성사 최초의 진화 철학자라 부르며 고대의 사유를 지금 여기로 소환합니다.맹자는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아이가 우물에 빠질 때 누구나 본능적으로 구하려 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은 현대 진화학자 프란스 드 발과 장대익 교수의 공감 본능 연구와도 연결됩니다. 뇌 속 거울뉴런의 작동이 바로 맹자의 성선설을 뒷받침한다는 겁니다.
맹자는 인간의 차별성을 사단(四端)에서 찾았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인간이 짐승과 다를 수 있는 네 가지를 뜻합니다. 저자는 이를 네 가지 윤리적 본능으로 번역합니다. 오늘날에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도덕 직관과도 연결됩니다.
트위터에서 혐오 발언을 보고 불편해지는 마음은 ‘수오지심’이고,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습관은 ‘사양지심’입니다. 맹자의 언어와 우리의 일상이 이처럼 닮아 있다는 점에서 윤리는 더 이상 고리타분한 옛말이 아닙니다.
센스있는 소제목을 보며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독재하는 ‘또라이’는 갈아치울 수 있다."라며 맹자는 폭정을 일삼는 왕을 폐위시켜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정치와 제대로 겹쳐지지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고 민주주의를 장식품으로 만든다면, 시민은 맹자의 말처럼 갈아치울 권리를 지닌다는 것입니다.
맹자가 강조한 인륜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철학입니다. 저자는 이를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와 연결합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고립된 개인은 결국 존재 기반을 상실합니다. 반면 관계성에 뿌리를 둔 윤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유지하는 최소 조건입니다.

맹자는 중용을 삶의 도리로 삼았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칼날 위를 걷기보다 어려운 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극단적 진영 논리를 넘어 중용을 실천하는 길은 그래서 더 절실하지만, 동시에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거대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 대신, 일상에서 인의를 실천하는 삶. 『최소한의 윤리』는 이를 두고 희망의 대열에 끼어 살고 싶은 사람의 태도라 표현합니다. 거창하지 않지만 윤리는 결국 삶의 습관과 태도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고전 읽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소한의 윤리』. 맹자의 언어를 21세기 담론과 연결하며 치밀한 독서와 현실 인식에 바탕한 진정한 고전 해석입니다.
맹자가 2300년 전 전국시대의 위기를 마주하며 제시한 인의의 정신이, 공멸의 위기에 놓인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